인사청문회에서 농락당한 노블리스 오블리제

백종만(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is Oblise)란 사회 지도층으로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노블리스)` 만큼 의무(오블리제)를 다해야 한다는 유럽 사회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을 지탱해 온 정신적인 뿌리이다. 최근의 인사청문회 대상이 된 장관 후보자들의 행적을 보면서 우리사회의 정치적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도덕적 덕목을 거론하는 것이 현실 정치와 거리가 한참 멀다는 생각에 참담하기 짝이 없다. 대부분의 장관 후보자들이 다운계약서, 위장전입, 투기적 목적의 부동산 거래, 세금포탈이라는 위법행위내지는 탈법행위를 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장관후보자들이 장관으로 임명될 것이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와 거리가 있는 장관들이 임명되는 우리의 정치문화 수준은 일차적으로 정치권의 낮고 무딘 사회적 책임의식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낮은 수준의 도덕의식과 법의식을 반영한 측면도 크다.
그동안 몇 차례의 인사청문회를 통하여 부동산 투기 목적이 아닌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 전입은 용인할 수 있다는 관용성이 높은 후덕한 여론도 형성되었다. 다운계약서 문제에 대해서는 당시에 누구나 다 다운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관행이었고 법도 이를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지, 개인에게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 안 걸릴 사람 누가 있는가라는 항변에 그럴 수도 있다고 반응하는 대중들도 상당수가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개인주의, 가족주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또 돈이 되는 일이라면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인맥, 학맥 등을 활용하여 얻어 낸 정보를 바탕으로 주택과 부동산에 무차별적으로 투기하여 차익을 남기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고, 세금내고 위법하지 않았으니 문제가 없다는 대중들의 낮은 도덕의식과 공공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내 가족,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불합리한 개인주의와 사적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위법이 아닌 한 탈법과 법망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것이 용인되는 도덕 불감증이 우리 사회에 가득 차 있다. 앞으로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원칙을 운운하지 말자. 정치권의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에 대한 경시풍조와 대중들의 사회지도층에 대한 기대 수준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인사 청문회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한 판의 코미디라는 생각이다. 앞으로 인사청문회에서는 위법성 여부만을 따지자, 그것도 국민 대중들이 암묵적으로 공범의식을 가지고 용인하고 있고 또 정치권이 자의적 잣대로 재단하는 용인가능한 수준의 위법성에 대해서만 따지자. 겉으로는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를 애기하면서 실제로는 후보자들 중 누가 위법과 탈법을 덜했는가를 따지고 있는 현실을 바로보아야 할 것 아닌가?
영국의 지도층 자제가 입학하는 이튼 칼리지 졸업생 가운데 무려 2,000여명이 1,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었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시 위험한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기도 했고, 철강왕 카네기, 석유재벌 록펠러에서부터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갑부 빌 게이츠에 이르기까지 미국 부자들의 자선 기부문화도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사회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자리에 선 우리사회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도덕적 책무의 이행에는 신경 쓸 일이 없다. 오로지 정치권과 대중들이 용인하는 수준을 넘는 위법한 일과 탈법적인 일들을 범하지 않는 자기관리에만 집중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