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미스가 골드미스로 되더니

(원한식교수)

중년이 되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흥얼거린 노래가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아마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히스테리가 이만저만. 데이트에 좀 늦게 가면 하루 종일 말도 안 해.”로 시작되는 최희준의 노래일 것입니다.
최희준이 히스테리가 이만저만 아니라고 노래한 올드미스(old miss)는 결혼 적령기를 지난 미혼 여성을 일컫는 말이지요. 우리가 보통 노처녀(老處女)라고 부르는 올드미스는 영어의 ‘old'와 미혼녀를 말하는 ’miss'의 합성어인데, 실제로 영어권에서는 ‘스핀스터(spinster)’ 또는 ‘올드 메이드(old maid)’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영어권에서는 쓰지 않는 한국어식 영어지요.
어쨌든 결혼적령기는 문화나 시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률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노총각은 25세 이상, 그리고 노처녀는 20세 이상으로 보고, 스무 살이 넘은 노처녀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다루었지요. 그래서 영조 6년에는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노처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에서 힘을 쓸 문제니 왕과 관리들이 직접 나서야한다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제는 나이 서른이 돼도 올드미스라 부르지 않지요. 그만큼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올드미스를 복이 없거나 불쌍한 여성으로 여겼다는 겁니다. 조선 후기에 몰락한 양반가의 여식이 집안이 어렵지만 체면 때문에 결혼을 못하거나 몸이 아파 결혼을 못한 노처녀들의 애환을 다룬 <노처녀전>이나 <노처녀고독각씨전(老處女孤獨閣氏傳)> 같은 내방가사, 그리고 위선적 인물로 그려진 노처녀의 히스테리를 잘 보여주는 현진건의 같은 소설들을 보면, 노처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을 대충 알 수 있지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 대중문화에서는 올드미스가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말과 같이 쓰이곤 합니다. 주로 성적불만족에 따른 심리적 불안감을 풍자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실제로 한의학에서는 노처녀나 비구니, 수녀 등에서 나타나는 독신여성경폐(獨身女性經閉)라는 증상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랜 독신 생활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와 욕구불만에서 나오는 병으로 무월경증상을 보인다는 것인데, 대체로 사회적 불균형과 뒤쳐졌다는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압박감, 그리고 더 이상 젊지 않다는 불안감 때문에 성격이 예민해져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만 그런 건 아니지요. 사카리 준코의 <결혼의 재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변역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2004년 일본의 베스트셀러로 원래 제목이 <마케이누의 절규>로 ‘마케이누(負け犬)’라는 말은 원래 ‘비겁하게 진 패배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노처녀를 풍자적으로 가리키는 유행어로 쓰인 걸 보면, 일본에서도 올드미스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고 있지요. 남녀평등과 사회진출에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룬 30대의 미혼여성들이 자신들의 내적 ? 외적인 면에 투자를 위해 새로운 트렌드와 소비를 이끄는 골드미스(gold miss)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히스테리’의 대명사였던 올드미스가 ‘황금알’을 낳은 골드미스로 바뀐 겁니다. 30대 초반의 평범한 노처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올드미스 다이어리’라는 시트콤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바로 그런 맥락이지요.
그런 올드미스가 골드미스로 되더니, 이제는 급기야 인구정책의 핵심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옛날에는 기혼 여성 가운데 학력이 높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이들 때문에 출산율이 줄었는데 이제는 아예 결혼하지 않는 올드미스가 급증해서 출산율이 줄어들며, 특히 대도시에 거주하는 올드미스는 인구정책상 과거 ‘농촌총각’만큼이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는 겁니다. 참으로 큰일입니다.
암행어사로 유명했던 박문수처럼 올드미스들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닌 나라의 문제이니, 국가 생산력을 위해 대통령이 직접 대도시 올드미스와 농촌총각을 묶어주는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프로젝트를 만들라고 상소라도 하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올드미스들한테 몰매 맞겠지요? 그러니 오늘 하루도 그냥 최희준의 노래나 한 구절 흥얼거려 보내겠습니다.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서비스가 이만저만. 덥지 않느냐 뭐 먹겠느냐 털어주고 닦아주고 오 탱큐.”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