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교육청 신청사 이전을 축하하며

대한민국학술원 사무국장 김은섭

전라북도교육청이 ‘진북동 시대’를 마감하고 ‘효자동 시대’를 열었다. 효자동 5택지개발지구 내 2만6120㎡의 부지 위에 전주의 명물인 합죽선 모양으로 지하1층 지상9층 건물 연면적 1만7356㎡의 규모로 신축되어 멀리 모악산을 바라보고 서 있다. 풍수사(風水師)가 아니더라도 모악(母岳)의 용(龍)이 승천하기 위하여 허물을 벗고 내려와 천잠산(天蠶山)에서 비단옷으로 갈아입고, 청사 앞 용호제(龍湖堤)에서 갈증을 해갈하는 형상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실로 200만 도민 모두와 함께 경축하지 아니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청사도 교육사(敎育史)와 함께 변천해 왔다. 도청 내에 교육을 관장하는 부서를 두고 도지사가 교육을 관장하던 구 도청의 ‘전동 시대’에서 교육행정을 일반행정과 분리하여 독립 청사를 마련한 ‘진북동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전동 시대’는 교육의 기반을 마련하는 시기였다. 해방과 미군정기를 거쳐 1948년8월 정부가 수립된 후 1949년12월 역사상 처음으로 ‘교육법’이 제정·공포되었다. 11장 173조로 구성된 교육법은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채택하고 민주주의 교육과 교육의 중립성 보장, 초등교육의 의무교육 실시, 교육자치제 도입 등을 표방했다. 6.25 전란과 폐허 속에서 미국의 도움을 받아 초등교육이 보편화되었다. 그리고 ‘진북동 시대’는 교육의 양적 팽창과 질적 향상의 시기였다. 1962년2월 폐지되었던 교육자치제가 1964년1월 부활하면서 도교육청은 일반행정과 분리되어 1964년4월 진북동에 독립된 청사를 열었다. 그러나 교육자치는 유보되고 합의제 집행기관으로 교육위원회를 두어 교육감을 선출했다. 1면 1중학교 설립과 의무교육 실시, 고등학교 평준화 도입 등으로 중등교육이 보편화되었다.
 이제 ‘효자동 시대’가 시작되었다. 우선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도민들이 직접 교육감을 선출한다. 교육에 대한 주민자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이는 교육이 정치로부터, 일반행정으로부터의 실질적인 중립성을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도교육청은 도민에게 교육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게 되었다. 동시에 과제도 부여받는다. 첫째, 공교육에 대한 신뢰회복이다. 학부모들을 사교육의 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 둘째, 전교직원은 지식전달자 또는 지식근로자가 아닌 진정한 ‘스승’으로서 거듭 태어나야 한다. ‘스승의 열정’은 아무리 열악한 교육환경도 극복할 수 있고, 어떠한 교육에 대한 불신도 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글로컬(Glocal)한 인재를 양성해야한다. 지방화와 세계화를 넘나들 수 있는 인재를 길러 내야 한다. 넷째, 내일을 준비하는 미래형 인간을 육성해야 한다. 교육은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가르침으로써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사 이전 부지를 확보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전북교육청은 전주생명과학고 내의 부지에 이전하고자 1997년 이전계획을 수립하고 이듬해 현상공모를 거쳐 설계까지 확정했었다. 그러나 학교측이 난색을 보여 이 이전계획은 7년여를 표류하게 되였다. 효자동 부지로 이전을 결정한 2004년5월은 이미 효자 5택지개발계획이 확정되어 부지정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 도심 공동화(空洞化)를 걱정하면서도 개발계획을 변경 승인해 준 김완주 전 전주시장과 주택공사 관계자들을 앞장서 설득해 주신 박재기 전 전주북부경찰서장, 100억윈 이상 손실(현 청사 부지는 당초 계획에 백화점 부지로 확정되어, 민간인에게 시가로 매각할 경우와 교육청에 조성원가로 매각할 경우의 차액)을 감수하면서까지 서울을 오가며 개발계획을 변경하여 주신 당시 박석 주택공사전북지역본부장, 그리고 시청과 주택공사 직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열악한 교육재정에도 불구하고 무려 432억원을 마련하여 새로운 전북교육의 보금자리를 만든 최규호 도교육감과 직원 여러분들께 축하를 드리며 ‘효자동 시대’의 전북교육이 세계 속에 우뚝 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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