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한 마음가짐으로 맞는 새해의 첫 출발, 설날

신광섭(국립민속박물관장/문학박사)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노래를 부르며 무척이나 기다리던 설날. “한살이라도 더 먹고 싶던 어린 시절에는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을 더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솔깃하기도 하고 웃어른에게 세배를 하면 건네주시는 세뱃돈을 받을 욕심에 무척이나 기다리던 설날이다. 해마다 설날이 되면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렵사리 기차표를 구하고,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은 승용차로 몇 번을 쉬면서 열 몇시간 만에 고향집에 간다.
명절 가운데에서도 최대의 명절로 꼽히는 설. 예로부터 우리들은 올바른 마음가짐을 갖지 않고 새해를 맞이하면 그 해에 나쁜 일이 많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에 설날을 맞이하면서 몸과 마음을 정갈히 준비하였다. 설은 한 해가 시작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묵은 해의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새롭게 한 해를 출발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날이다. 설날은 새해의 첫 시작으로 몸과 마음을 삼가고, 정갈한 마음가짐으로 맞이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설날에는 차례, 세배, 설빔, 덕담(德談), 복조리걸기와 같이 다양한 풍속과 함께 윷놀이와 널뛰기 같은 놀이가 있으며, 떡국을 먹고 나이도 한 살 더 먹게 된다.
설날이 가까워지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던 가족들이 모두 큰집으로 모인다. 마치 잔치 날이라도 된 듯이 시끌벅적하게 식구들이 모여 앉아 살아왔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모여 앉아 그 동안에 일어난 재미있는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설날을 기다리게 된다.
설날??가장 중시된 풍속은 새해인사였다. 조상에 대한 새해인사가??차례(茶禮)??였고, 살아 계시는 집안 어른들과 마을 어른들에 대한 새해인사가 '세배(歲拜)??였다. 설날 아침을 맞아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조상들에게 드리는 차례는 내 뿌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고 조상이 있기에 비로소 내가 있음을 몸소 느끼게 된다. 차례는 자신의 뿌리를 아는 체험장이다. 세배를 하면서 덕담(德談)을 나누게 되는데, 옛날에는 세배를 하더라도 세뱃돈 대신에 덕담을 주고받았다. 설날의 음식을 세찬(歲饌)이라고 하며, 세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떡국이다. 떡국은 차례상에 오를 뿐만 아니라, 설날 내내 먹는 전통적인 음식이다.
요즈음에는 드물지만 예전만 해도 설날 새벽에 복조리를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복조리장수에게 조리를 사서 벽이나 문 위에 걸어 두었다. 이러한 풍속은 먹을 쌀이 없어서 굶는 때가 많았던 시절, 설날에 산 복조리로 일년 내내 쌀을 일 수 있고 한해 동안 먹을 식량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 달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와 함께 복조리로 쌀뿐만 아니라 복(福)을 많이 일어서 집안이 편안하고 부자가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윷놀이는 4개의 윷가락을 던져서 말판의 말을 빨리 내는 사람(편)이 이기는 놀이이다. 설날에서 정월 보름까지 주로 하는 윷놀이는 남녀노소 모두 집안이나 바깥 어디에서나 놀 수 있는 대표적인 놀이이다. 하지만 단순히 즐기기 위한 놀이가 아니라, 한해의 농사를 점치는 도구로도 사용되었으며 일부 마을에서는 편을 갈라 이기는 편의 마을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이와 함께 윷점이라 하여 윷으로 점을 치기도 했다. 윷점은 윷을 세번 던져 나오는 결과를 보고 개인의 운세를 점치는 풍속이다.

설날은 귀향, 차례, 세배 등을 통해 산업사회의 가족중심적, 개인주의적 생활방식을 벗어나 조상과의 만남, 친족과의 합일(合一)을 추구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후손이 조상신에게 제사를 모신다는 점에서 설날은 세속적인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옮겨가는 과정이자, 개인적 세속생활을 벗어나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근원으로 회귀를 통한 정신적인 유대감을 다지는 날이기도 한다. 그러나 설날이 단지 혈연적인 행사로만 그치지 않는다. 비록 설날에 가족과 조상의 만남을 통한 상생(相生)의 시간과 공간이 재삼 확인될지라도, 설날의 성격이 민족 전체가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지 가족적인 명절로 한정지을 수 없게 한다. 국민 전체가 고향을 찾아 길을 나서고, 같은 날 아침 차례를 올리며, 민족의 옷인 한복을 차려 입는다. 여기에서 설날이란 우리 민족에게 일체감과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의미를 지닌 최대의 명절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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