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축록의 끝은 어디인가?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주인에게 삶아 먹힌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 아시죠?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인데, 그 말을 유명하게 만든 한신이 역적으로 몰려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 “내가 괴통의 계책을 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는 후회였습니다.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기 전, 괴통은 천하대권의 향방이 한신에게 달려 있음을 알고, 천하를 셋으로 나눠(三分天下) 독립하라는 계책을 말합니다. 유방 밑에 있으면 언젠가는 당할 지도 모르니 일찌감치 벗어나라는 겁니다. 하지만 한신은 “내 어찌 이익을 바라고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는가.” 하며, 괴통의 말을 듣지 않다가 끝내는 역적으로 몰려 삼족(三族)이 멸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신의 후회를 전해들은 유방은 즉시 괴통을 잡아들여 다그칩니다.
“네가 한신에게 나를 배반하라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신이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못난이가 신의 계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자멸해버렸습니다. 만약 그 못난이가 신의 계책을 썼던들 어찌 그를 무찌를 수 있었겠습니까?”
괴통의 태연한 대답에 화가 치솟은 유방이 화가 나서 “이놈을 삶아 죽여라.” 하고 명령하자, 괴통이 “아! 원통하구나. 이렇게 죽다니!” 하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유방이 “네가 한신을 모반하게 해놓고는, 무엇이 원통하다는 말이냐?” 하고 물으니, 괴통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진나라가 사슴(鹿)을 잃어버리자 천하가 모두 그 사슴을 쫓다가, 키가 크고 발이 빠른 자가 먼저 그 사슴을 잡았습니다. 도척(盜?)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는 까닭은 요임금이 어질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 개는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짖는 것입니다. 그때 신은 오로지 한신만 알았을 뿐이지, 폐하를 알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천하에는 칼끝을 날카롭게 갈아가지고 폐하께서 하신 일을 자기도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다만 힘이 모자랐을 뿐이었습니다. 폐하께서는 그들을 모두 삶아 죽이시겠습니까?”
괴통의 말을 듣고 난 유방은 “이 사람을 내버려두어라.”고 명령하면서 풀어줬다는 이야기인데, 제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진나라가 사슴(鹿)을 잃어버렸다.”는 괴통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옛날에는 사슴이 종종 황제의 자리(帝位)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는 겁니다. 당나라 초기의 정치가였던 위징(魏徵)의 시에도 “중원은 아직 사슴을 쫓아 붓을 던지고 융헌을 일삼는다.(中原還逐鹿 投筆事戎軒)”고 하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중원은 천하를 뜻하고, 융헌은 병사(兵事)를 말하지요. 천하가 어지러워 전쟁을 일삼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정권을 다툰다는 뜻으로 ‘중원축록(中原逐鹿)’이란 말이 쓰이기도 하지요. 아마 사슴을 뜻하는 록(鹿)자가 녹봉을 뜻하는 녹(祿)과 비슷해서 그런가 봅니다.
사슴 하면 생각나는 구절이 또 하나 있습니다. 남송(南宋) 때 임제종(臨濟宗) 선승(禪僧)인 허당(虛堂) 지우(智愚, 1185~1269)의 법어집(法語集)인 <허당록(虛堂錄)>에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하고, 금을 움켜진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한다.(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고 하는 말이지요.
첫 번째 구절은 한무제(漢武帝) 때 회남왕(淮南王)으로 책봉되었던 유안(劉安)이 편찬한 <회남자(淮南子)> 설림훈(說林訓)에서 “짐승을 쫓는 사람은 큰 산을 보지 못한다. 밖으로 쾌락과 욕망을 쫓으면 명철함이 가려지기 때문이다.(逐獸者目不見太山 嗜欲在外 則明所蔽矣)”고 한 말에서 빌려 쓴 것이고, 두 번째 구절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제(齊) 나라에서 금을 훔쳤다가 잡힌 사람에게 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는데도 금을 훔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자 “금을 가지고 갈 때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만 보였다.(攫金者不見人)”고 대답했다는 <열자(列子)>에 따온 것이지요.
모두가 눈앞의 명예나 이욕(利慾)에 미혹(迷惑)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道理)를 저버리거나 눈앞의 위험도 돌보지 못한다는 것인데, 요즘 들어 그런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서 걱정입니다. 선거 때만 되면 귀신 같이 나타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사기열전>을 읽으면서, 중원축록(中原逐鹿)의 끝은 어디인가를 묻는 겁니다. 제발 나중에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했다고 앙앙불락하지 마시고, 미리미리 마음들 잡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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