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난히도 비를 좋아한다. 비는 곧 우산을 우산은 곧 비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비와 우산 그리고 나는 하나가 된다.
작품에서 우산은 주된 소재일 뿐 아니라 정체성을 반영하고 조형어법을 구현하는 존재다. 비와 우산은 자연적 현상을 인위적 도구로 방어하는 관계로서 서로 상대적 입장에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와 우산은 적대적 상대개념이 아닌 상호보완적 의미가 더 크다. 그윽한 운치를 더해 우수와 낭만으로 우리를 이끌고 서정적 시상과 긍정적인 희망을 생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에서 작품 속 우산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또 다른 생명의 요체다. 접혀짐은 죽음을, 펼쳐짐은 생명력을 부여 받는 식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가벼운 깃털이 되어 흩어지거나 뭉치는 과정을 통해 화면 속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화하기도 한다. 즉 산수풍경, 나무, 사과, 매화꽃은 물론 허공을 비상하는 새들의 나래 짓이 되기도 하고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의인화되기도 한다.

우산이 자연물에 굴절돼 비현실적인 형상을 띠는데 이는 서양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기법(모순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들을 같은 화면에 결합시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자아내는 기법)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하겠다.

나의 작품은 동양회화정신을 근간으로 한 새로움에의 도전이자 현대적 모색에 있으며 재료는 한지에 수묵채색을 사용, 재료적 한계성을 뛰어 넘어 그 가능성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즉 전통과 현대, 현실과 가상, 자연과 문명이라는 상대적 개념을 같은 화면에 접목해 사물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전혀 새로운 세계로 상상의 폭을 확산시키고자 했다./박인현

Umbrella-달빛소나타 120×70cm 한지에 수묵채색 2011

김제 출생으로 홍익대와 같은 대학원 동양화과를 마쳤다. 현재 전북대 예술대 학장 및 전북대예술진흥관 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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