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큰 벽 거울을 들여다본다. 한 뼘쯤 작아진 늙음이 어둡게 밀어닥친다. 맑은 물에서 못 사는 물고기 심정을 이제야 읽을 나이가 되었나 보다. 세월의 눈 귀 입을 진흙으로 척척 발라야 할 이치가 눈이 맑으니 잘도 보인다(‘어안을 읽다’ 중).’

눈을 뜨고 있었음에도 발견해지 못했던 것들, 실재와 현실 너머 세계를 보기 위해 살아서도 죽어서도 감지 않는다는 물고기의 눈을 갖기로 한 이는 팔순을 앞두고 있는 시인이다.

전북문학관 이운룡 관장이 시집 ‘어안을 읽다(이랑과이삭)’를 펴냈다. 전북대 학사와 한남대학원 석사, 조선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친 그는 1964년부터 1969년까지 ‘현대문학’ 시 3회 추천 및 ‘월간문학’ 문학평론 당선으로 시인이자 평론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전북문인협회장과 중부대 국문학과 부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전북문학관장과 세계한민족작가연합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책에는 칠순 기념 시집 ‘산새의 집에는 창이 없다’와 시론집 ‘시와 역사현실의 명암’ 이후 올해까지 7년간, 특히 2009년과 2010년에 집중적으로 쓴 작품 87점이 실렸다.

이 관장은 “‘이제 늙었구나’하는 생각과 외모와 느낌을 숨길 수가 없다. 큰 수술을 받고 난 후에는 기억력과 체력도 쇠퇴했고 상상력이나 감수성도 저하돼 언제까지 볼펜을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며 “여력이 있을 때 정리해 두자고 시집을 내게 됐다”고 출간계기를 밝혔다.

모두 6부로 구성된 책은 비정하고도 무심한 역사에 대해 고발자의 격앙이 아닌 여과 후 우아로 대응하고, 날마다 한가한 시간 그 시들시들함을 즐기는 등 노장으로서의 관록과 여유를 담고 있다. 늘 새로운 눈을 가지려는 도전의식도 엿보인다.

서평을 맡은 이향아 호남대 명예교수는 “그가 말하는 ‘어안’에서 눈이 보여주는 상식과 이별하고자 하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거역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창조에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고 평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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