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여인은 두 번 결혼할 수 없었다. 두 번 결혼하면 아들, 손자까지 문과에 응시할 수 없는 등 사회적 진출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태어나선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면 남편을 따르며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르는 삼종지도도 따라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지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낮진 않았다. 남편도 부인에게 존대어를 썼고, 특별한 이유 없이 본부인을 버릴 수 없었다. 적어도 16세기까지는 출가한 딸도 아들과 동등하게 재산상속을 받았고, 아들과 딸은 돌아가며 제사를 모셨다.

조선여인의 삶을 살펴보고 그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12일부터 11월 3일까지 전주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조선여인의 삶’.

2013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복권기금 지원에 공모, 선정돼 전주역사박물관을 비롯한 도내 6개 기관과 (사)한국박물관협회가 주관한다. 공동참여관은 어진박물관과 전북대박물관, 원광대박물관, 전주예수병원의학박물관, 전주한지박물관이다.

전시는 조선시대 여성의 출생부터 삶의 모습, 사회적 지위, 향유문화까지 면면을 60여점의 유물로 보여준다. 그들의 지위가 매우 낮았다는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17세기 말, 즉 조선시대 말에서야 나타났다. 이 자리를 통해 조선 여인을 비롯한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길 바란다”고 취지를 밝혔다.

모두 3부 중 ‘1부 출생과 혼인’에서는 축복하지 못한 탄생부터 교육, 계례(성인식), 혼례, 부부간 사랑, 출산 및 육아까지의 과정을 만나본다.

‘2부 가사와 생활’에서는 안방마님으로서의 역할, 의상과 장신구, 여가와 놀이를, ‘3부 흔들리며 피는 꽃’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조선이 요구한 여인상, 시대의 규제와 억압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여인들을 각각 소개한다.

유물로는 우암 송시열이 출가하는 큰 딸을 위해 지은 것으로 여성의 도리 20여 가지가 적힌 '우암선생계녀서’를 비롯해 혼례 때 사용하는 큰 댕기 ‘부귀다남자명 댕기’, 고림군파 이수의 처가 종부인 이위의 처에게 형편이 어려우니 모시고 있던 사당을 모셔가라고 적어 보낸 편지 ‘언문편지(전북지정문화재 제103호)’, 칠산군의 자녀들이 남녀 동등하게 재산을 분배하며 작성한 ‘동북화회입의(보물 제718호)’가 대표적이다.

조선시대 가장 오래된 여성 필적 ‘설씨부인 권선문(보물 제718호)’과 요리법이 적힌 한글 음식 방문, 혼례 때 여성이 타는 가마 ‘사인교’도 자리한다.

이 관장은 “다문화가정과 문화소외계층이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도록 공동참여기관에서 한지함 만들기, 매듭공예, 간찰(편지)쓰기 등 관련체험을 27회에 걸쳐 진행한다”고 밝혔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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