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함민복의 시 ‘부부’

지난 24일 방영된 KBS1 TV ‘당신이 선물입니다’라는 프로그램은 난치병 부부의 가슴 뭉클한 사연을 담았다. 이들 부부의 사랑이야기를 보면서 다시 한번 ‘부부’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부부로 살면서 누구나 희노애락을 겪는다. 그 가운데 ‘예술인 부부’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일반인과는 조금은 다를 듯한 그들의 이야기가 26일 펼쳐진다.

▲부부별곡-쌍쌍파티
사단법인 문화연구창(대표 유대수)이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지난해 박홍규 이기홍 ‘지금, 여기, 리얼리즘’에 이어 두 번째 예술기획 프로젝트.
지역내 예술가 부부 5쌍을 초청하여 그들이 가진 예술적 재능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복합문화공간 차라리언더바에서 20일부터 전시를 시작으로 26일 오후 7시에는 공연과 더불어 5쌍 부부의 토크쇼를 마련하여 부부예술가로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이번 ‘부부별곡-쌍쌍파티’에 초청된 5쌍의 부부는 △이병노(도예가) 임진아(공예가) 부부, △김삼열(서양화가) 이일순(서양화가) 부부, △박대용(한국화가) 안은정(국악인) 부부, △나병재(만화가) 최경희(국악인) 부부, △박규현(연극인) 노선미(국악인) 부부로 지역에서 활발히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고 있다.
이날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공연계에서 활동해 온 공연예술가는 연주를 선보이며 지역에서 예술가 부부로 살아오면서 느낀 이야기를 소탈하게 나눌 예정이다.
예술 안에서 삶, 삶 안에서의 예술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통해 일상의 삶 속에서의 예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소설이 인생보다 크고 소중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소설이란 접근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예술도 터전으로서의 삶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그저 소망일 뿐입니다. 삶 속에서 이루지 못한 소망이 결코 구현되지 않는 무엇이 존재하기 때문에... 씁니다.”
- 소설가 박경리

유대수 대표는󰡒지역 예술가 부부들이 참여하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과 삶이 가까워지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며 󰡒예술가가 아닌 일반인도 많이 참여해, 이웃 부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공감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 미리 만난 본 예술가부부

▲ 이병로(도예가)․임진아(공예가)
“예술인 부부로 사는 거요? 장단점이 있죠.”
문화예술기획자로 활동 중인 아내 임진아는 “작가는 작업만 해야 하는데 전시 한 번 하면 대관부터 사진 촬영, 도록 및 현수막 만들기, 홍보까지 손이 많이 간다. 경험이 있으니 도움을 줄 수 있다. 작업이 막혔을 때도 좋은 대화상대다”며 “다만 사회에서 말하는 경제적 안정은 좀 더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부별곡에 대해서는 “대부분 10년 이상 된 부부들이 참여하는 거 같다. 신뢰는 있지만 다소 소원하고 각자 영역이 분명해질 시기인데, 둘의 공통지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옛날 편지나 홈페이지를 찾아보며 ‘이럴 때도 있었지’ 싶더라. 처음 감정과 부부 또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역에도 여러 예술인 부부가 있지만 같은 장르가 아니면 아내 혹은 남편 한 쪽만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번 기회를 통해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예술인과 소통할 수 있을 거 같아 기대됩니다.”

▲ 김삼열(서양화가)․이일순(서양화가)
“예술인 부부의 장점이죠? 머리와 가슴이 가깝다는 거죠.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 더 많이 조언해주고 도와줄 수 있습니다. 반면 생활인으로서의 불안함은 감수해야죠.”
올 한 해 왕성한 활동을 벌인 아내 이일순은 부부 간 소통하는 요소는 ‘아이’라고 밝혔다. 그는 “화가부부라고 해서 그림을 그리면서 교감하거나 화해하진 않는다. 다른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애 때문에 더 참고 이해하는 거다”고 말했다.
부부별곡에 대한 기대감도 남다르다. “같이 참여하는 건 처음이라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예술인 부부의 삶을 궁금해 하는 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다른 예술인부부의 좋은 점을 참고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애기아빠가 전주미술협회 일을 보느라 그림을 많이 못 그렸는데 요즘엔 조금씩 하고 있어요. 작가는 작업을 안 해도 숙제나 그리움처럼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기 마련인데 이를 해소하게 돼 기쁩니다. 이번 참가가 작가로서의 포문을 여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박규현(연극인)․노선미(국악인)
“공연장이나 문화예술 행사장에서 정말 우연치 않게 만나기도 하는 사이, 사랑하는 남녀지만 때론 친구와 동료가 되네요”
서로의 스타일을 존중하고 쓸데없는 침범이나 간섭하지 않은 것이 이 예술인 부부의 행복 비결이다. 여기에 동지적 관계를 바탕으로 한 상호 도움주기도 여타 다른 부부들과 다른 점이다.
“한옥생활체험관을 운영하다 보면 많은 기획이 필요한데 박규현은 둘도 없는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새로운 콘텐츠 구상 등 소프트웨어와 함께 공연 섭외 등 현장에서 몸으로 많이 도와줍니다. 아주 저렴한 비용이거나 무상으로. 또 신랑은 신랑대로 공간을 활용하는 이점을 누리기도 하지요”
친정어머니가 육아를 맡아줘 이로 인한 충돌은 없지만 그래도 부부인만큼 ‘부부싸움’이 있기 마련. 노선미는 감정이 풀어질 때까지 냉각기를 갖는다.
“제가 신랑보다 2살이 더 많아요. 그리고 전 4대 보험도 가입돼 있구요.(웃음) 우리 부부 더 재미있고 많은 얘기들은 26일 차라리언더바에서 확인하세요”
/이병재기자․이수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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