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작가를 닮는다고 했던가. 아픔을 딛고 일어선 작가가 한층 밝아진 작품으로 돌아왔다.

서양화가 양순실이 20일부터 4월 2일까지 우진문화공간 전시실에서 여덟 번째 개인전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을 열고 있다. 6개월 간 밤낮 가리지 않고 그린 작품들을 주축으로 소품부터 100호까지 40여점을 선보인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서 나라곤 없이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다양한 소재로 풀어내는 방식은 그대로지만 어딘가 달라졌다. 화가 자신의 생각과 자세가 전환기를 맞아서다.

“내 삶이 버겁다고, 여성의 삶이 희생으로 점철되는 현실이 부당하다고 징징대듯이 투정하며 작업을 해 왔던 게 아닌가 묻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몸에 새겨진 오래된 습관처럼 단번에 바뀌진 않겠지만 이제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로 세상 밖과 은밀하게 조우하게 있다고 느껴요.”

전시장 벽면을 가득 메운 드레스 입은 여자는 여느 때보다 큰 100호에 그렸다. 여전히 손과 발, 얼굴을 없어 자신의 인생이 없다고 말하지만 치마폭이 넓어지고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배경으로 하는 등 조금의 당당함과 독립성을 회복했다.

상황은 마찬가지지만 그 안에서 무릉도원과 같은 이상향을 꿈꾸고 또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가족에게 쉼이 된다는 의미의 ‘의자’와 주방에서 즐겨 사용하는 ‘보자기’ 또한 주요소재.

특히 눈길을 끄는 건 2009년 완성 후 미처 공개하지 못한 ‘집 시리즈’다. 작디작은 창문을 가진 집은 나가길 원하지만 책임감과 사랑 때문에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함을 가리키고, 그림자 속 연기는 집안일에 열중하는 수고로움을 대변한다.

전북대 미술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 후 모교 서양화과에 출강 중이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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