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회에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중요했지만 주체인 예술인의 사회적 지위는 낮았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전통예인들의 삶과 예술세계는 기록되지 못했는데 오늘날 국악인들의 일대기를 구술로 정리해 전통음악연구 사료로 남기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전라북도립국악원(원장 윤석중)이 소리의 본고장으로서 전통예인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구술 그대로 담은 ‘전북의 전통예인 구술사 13,14,15’를 펴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개년 연속사업으로 전북도 지정 예능보유자 중 연장자 순으로 구술 의지가 있는 이들 24명을 취재하고 있다.

2011년에는 호남살풀이춤 예능보유자 최 선, 부안농악 예능보유자 나금추,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 이일주, 판소리장단 예능보유자 이성근을, 2012년에는 가사 예능보유자 김봉기,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 최난수와 최승희, 순창 금과들소리 이정호, 2013년에는 시조 완제 보유자 오종수, 김제농악 설장고 보유자 박동근,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 조소녀, 정읍농악 예능보유자 김종수 등의 이야기를 모아 모두 12권을 발간했다.

2014년 구술을 정리한 이번에는 제13권 남원농악 상쇠 예능보유자 류명철(74), 제14권 정읍농악 상쇠 예능보유자 유지화(73), 제15권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성준숙(72) 편을 출간했다. 구술채록은 각각 서경숙, 김무철, 김정태가 맡았다.

예인의 길에 접어든 계기부터 과정, 인생의 크고 작은 사건, 희로애락에 이르기까지 삶과 예술세계를 모두 다루고 있는 게 특징. 주인공들의 말씨를 그대로 기록해 이해하기 훨씬 쉽고 생생함도 더한다.

호남좌도농악의 한 부류인 남원 금지농악의 계보를 잇고 있는 류명철은 해방직후 남원농악의 맥을 이은 부친 류한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농악을 접했다. 열여덟 돼서는 소년 상쇠로 불리며 이름을 떨쳤으나 1970년대 후반 불어닥친 집안의 불운으로 10년 이상 농악을 잊고 살았다. 다시 꽹과리를 집어든 그는 일흔이 훨씬 넘은 현재까지도 관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선사한다.

판굿 지휘자로서 쇠퇴한 정읍농악의 명맥을 잇고 명성을 유지해 온 유지화는 심부름길에 만난 판소리가 인연이 돼 결국엔 전북여성농악으로 향했다. 세련된 전수 스타일이나 매끄러운 말솜씨는 없지만 올곧은 예술적 자존심과 자부심, 포기할 줄 모르는 열정이 지금의 그를 가능케 했다. 임플란트로 말하는 것조차 힘든 요즘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현장을 압도한다.

소리꾼 성준숙은 전주를 찾아온 여성국극단의 공연을 보고 소리에 매혹됐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던 그는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를 구경 후 대통령상을 탈 작정으로 소리에 매진하고 결국 판소리 다섯바탕을 학습, 모두 완창하는 기록을 세운다. 현재는 제15대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판소리 발전에 힘쓰고 있다.

윤석중 원장은 "전통예인구술사사업은 전통예인들이 지닌 예술의 편린을 살펴볼 수 있는 잣대가 될 뿐 아니라 전라북도 국악발전에 초석을 다지는 일이 될 것”이라며 “책이 전통예인을 갈망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예술지망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희망해본다”고 말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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