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꽃다운 시절이 있다. 전성기 혹은 리즈 시절이라고도 불리는 이때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길지도 않고 자주도 아니어서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게 여겨진다. 누군가는 그 때를 떠올리며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고, 분주하고 냉혹한 현대사회 속에서 온기를 되찾기도 한다.

이른 봄의 길목에서 작가들이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 둔 그 때 그 시절을 풀어낸다. 갤러리 숨(관장 정소영)이 지난 2일부터 28일까지 진행 중인 테마기획전 ‘꽃으로 다가오다’전에는 서혜연, 이경섭, 이승희, 이적요, 임택준 등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술인 5인의 작품이 자리한다.

각 작업은 평소 기법과 주제를 유지하면서도 봄내음을 물씬 풍기는 게 특징이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사람 형상이 대부분이나 보다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서혜연은 여느 때처럼 다채롭고 화려한 색상과 대담한 터치 및 분할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완성된 한 여인은 어쩐지 존재하고 있지만 금세 사라질 거 같은 느낌을 주는데, ‘꽃은 곧 인연’이라는 작가의 정서를 반영해서다. 활짝 피었다가 이내 사라져버리지만 그 기억은 시간과 가슴 속에 쌓이고 화폭 위 잔상으로 남겨지는 점에서 둘은 맞닿아있다.

이경섭은 화폭 전면에 얼굴을 숨겨뒀다. 조금은 어두운 표정과 단색에 가까운 색감은 꽃다운 시절이 없었던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게 하는데 화실에 있었던 그 시간들이 꽃이었다고 말한다. 350여회의 전시에 참여해 온 그가 작업실에서 보내야 했던 시간이 얼마나 많았으며 그것들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적요는 여인 그리고 꽃을 구현했다. 만개한 채 한 쪽 어깨에 달린 꽃이 바느질로 완성된 모습은 그의 전성기가 전매특허인 바느질 드로잉임을 말해준다. 작가노트를 통해서는 “바느질 드로잉은 온통 내 겨울을 덮었다. 쓰디쓴 비애가 고개를 내밀 때 붉은 실을 여덟 겹으로 이어 비애를 꿰매버린다”고 언급했다.

이승희는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홑씨를 신비롭고 따스하게 조명한다. 낯선 곳에서 날아든 꽃씨 하나가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울고 있지만 별 하나가 웃으며 잡아주듯이,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자고 말하는 듯하다. 그 순간이야말로 꽃다운 시절이다.

임택준은 나체 곳곳에 꽃을 그렸다. 스스로를 이름 모를 들풀이라며 하찮게 여기는 이들에게 나 자신은 만개한 꽃이자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를 평소의 대담하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정소영 관장은 “작품을 통해 꽃답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 젖어보려 한다. 우리들이 잊고 지냈던 마음 속 꽃을 찾아 설레는 계절 봄을 맞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220-0177./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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