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작품세계를 선보이며 지역을 대표하는 연극단체로 거듭난 전주시립극단이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뜻 깊은 한 해고 지난해 부임한 상임연출의 개성과 연출력을 보다 분명히 보여줄 수 있는 한 해인 만큼, ‘삶과 시대’를 주제로 극단 활성화와 대중화에 온 힘을 쏟는다. 그 방향성을 보여줄 첫 번째 정기공연 ‘허삼관 매혈기’의 시연회도 10일 덕진예술회관에서 열렸다.

▲ 30주년 맞은 전주시립극단, 올해 행보는

올해는 ‘삶과 시대’를 주제로 시민과 잦은 만남을 갖고 극단의 활동을 알리는데 주력하는 가운데 정기공연 2편과 기획창작공연 1편을 비롯해 기획제작공연 2편(3차례), 시립예술단 1편을 올린다.

봄 정기공연인 ‘허삼관 매혈기(13일~14일 덕진예술회관)’는 중국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위화의 대표작을 극화한 것으로 평생 피를 팔아 가족을 위기에서 구해낸 속 깊은 아버지 허삼관을 통해 삶의 고통을 익살과 해학, 애정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기획창작공연인 ‘덕진연못, 넘어오는 푸른 바람은(가제․5월 중 한국전통문화전당)’은 덕진연못을 소재로 과거와 현재 전주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담아내며 연기와 춤, 노래가 어우러지는 세미뮤지컬의 형식을 지닌다.

가을 정기공연인 ‘목란언니(10월 중 덕진예술회관)’는 분단 70주년을 맞아 남북한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한 채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탈북여성을 조명한다. 이와 함께 극단 레퍼토리여럿과 시립합창단과 함께하는 공연을 선보인다.

시립예술단의 주요공연장이지만 시설상의 문제로 방치되다시피 한 덕진예술회관의 경우 지난해부터 시작된 리모델링 사업이 올해 10월 완료됨에 따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될 방침이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일반인과 기성작가를 대상으로 희곡을 공모해 2016년 상연, 보다 참신한 작품을 선보이는 한편 시민과 함께하는 극단으로 거듭난다. 사진과 대본 등 30여 년간 모아둔 자료는 파일로 정리해 극단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 올해 첫 작품 ‘허삼관 매혈기’, 들여다보니…

같은 작품이라도 어떤 장르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먼저 만들어진 작품 즉 원작을 넘어서기도 힘들다. 최근 개봉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만 보더라도 소설로서는 큰 성공을 누렸지만 영화에서는 그리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원인은 뭘까. 각 분야의 언어가 달라서일 것이다.

국공합작과 문화대혁명을 거친 196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희생을 아랑곳 않는 한 남자의 씁쓸하지만 가치 있는 인생을 담은 극단의 2015년 봄 정기공연 ‘허삼관 매혈기’는 중국 베스트셀러를 극화한 작품으로 책의 언어를 연극의 언어로 불러내는데 미숙한 모습이다.

연극이라면 감정이나 상황 전환에 대한 보여주기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연출자의 말처럼 원작에 충실하려다보니, 방대한 내용을 빠짐없이 2시간여로 축약하려다보니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기듯 너무 급하고 간결하게 처리되는 부분이 많았다.

허삼관과 그가 기른 아들 일락 사이 감정선에서 특히 그랬는데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채 돌변해 공감하기 어려웠다. 더불어 구조가 엉성했다. 일락이 친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장면 같은 클라이맥스를 잘 살리지 못하고 부연이 지나치게 많은 등 각 장면 비중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해 지루하게 느껴진 것.

매혈이 성행하는 사회분위기와 허삼관의 별명인 자라대가리의 뜻 등 중국 특유의 문화와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없어 이에 대한 한국적인 재해석이나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중국이 무대이긴 하지만 인생사의 희로애락과 부성애를 잘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시장’ ‘허삼관’ 같은 아버지와 가족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최근 개봉해 시대적인 흐름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허삼관(안대원)의 연기도 눈길을 끌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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