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고 있네.”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 말인가. 문장에 숨은 어구를 넣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피면 다음과 같다. “책 쓰고 자빠졌네.” 뭔가 허황된 짓거리를 하는 사람을 향해 던지는 마을 어르신들 말씀이다. 책을 쓰는 일, 특히나 평생을 땅 가깝게 엎드려 살아온 마을 어르신들 일상과는 더욱더 거리가 먼 일이다. 어쩌면 ‘자빠졌네’ 비아냥거리는 말법까지 생겼을까.
책이 그렇다면 글은 어떨까? 글 또한 다르지 않다. 적어도 책마을해리를 둘러싼 마을 어르신들에게는 그랬다(왜 과거형이냐면, 지금은 그 거리가 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바닷가 시골의 폐교(유네스코 고창갯벌까지 자전거로 10분거리이니)에 자리잡은 책마을해리가 마을 어르신들과 작은 공동체를 일궈가는 매개는, 아직까지 적어도 글과 말이다.
책마을해리가 살아가는 틀을 살피면, 먼저 수도권을 포함해 지역 안팎을 넘나들어 어린이, 청소년들이 참가하는 ‘출판캠프’가 있다. 2박3일까지 다양한 일정인데, 스무 명 남짓 아이들이 책마을 주변의 다양한 역사문화생태 체험거리를 취재하고 글과 그림, 사진으로 남겨, 책으로 펴내는 생생체험캠프다. 다음은 독서캠프, 서평캠프 같이 책을 읽거나 살피거나 글로 표현하거나 하는 작은 캠프가 있다.
이 캠프들이 책마을(혹은 우리 나성리)를 확장해 외부(어린이와 청소년, 가족)와 만나는 방식이라면, 앞서 이야기한 마을어르신들과 말과 글로 공동체의 생기를 불어넣는 방식이 있다. 지난 2013년부터 진행해온 마을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이다. 작년에는 전북아르떼의 지원으로 좀더 풍성한 결실을 이루기도 했다. 학교에 가본 적 없거나 학교이력이 짧은 마을 아짐들에게 읽기와 쓰기, 그리기 같은 새로운 표현방식을 같이 나누고 그 결과를 모아보는 일이다. 그 과정에는 ‘나의 살던 고향은’ 같은 구술채록도 있고, 북 장구 꽹가리를 배우는 풍물놀이, 서예 글쓰기가 감초노릇을 했다. 이 또한 한권의 책으로 태어났다. 『마을책, 오늘은 학교가는 날』이다. 글과 그림, 사진같은 인문요소를 통해 외부와 만나는 것을 확산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마을어르신들이 그를 매개로 모이는 것은 수렴이다. 그리고 그 확산과 수렴이 만나는 결절점에 마을 바깥 사람들과 마을 안 사람들이 만나는 축제가 있다. <부엉이와보름달 작은축제>이다. 매달 보름(정확히는 보름 가까운 주말 금요일 밤) 밤늦도록 책을 혼자 읽거나 같이 읽고 책 이야기를 나누는 정말로 작은 축제다. 재작년부터 매달 이어오다 보니, 개근하는 부엉이도 꽤 늘었다. 게다가 지난 여름부터는 포크가수들이 작은 공연으로 축제를 열어주고 있다. 지난 대보름에는 스무 명 넘는 풍물패와 마을굿을 지폈다. 명실상부 마을축제가 되었다.
책마을과 우리 나성리(월봉마을)가 이어가는 작은공동체 실험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도시를 던지고 책마을에 인문마을을 열어가는 다섯 사람들(청소년 둘은 빼고)이 문득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전 마을 지나가던 장의 차량을 보고서다. “우리 아짐들 돌아가시면, 이렇게 맺은 정을 어떻게 풀어내 떠나보낼까.” 피붙이는 멀리 있고, 이제 한 살림으로 사는 우리가 새로운 마을이다. 새로운 가족이다.
/책마을해리 촌장 이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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