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네가 나중에 나를 기억하진 못할지라도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6.25 전쟁 중 참전 병사가 남긴 편지가 아니다. 메르스 환자 전담 이송반으로 긴급 발령을 받은 서울 한 소방부서의 대원이 가족에게 남긴 편지다. 서울시내에서 발생한 메르스 의심환자를 국가 지정 격리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그 임무다. 그들은 혹여 가족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길까봐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메르스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시대, 여전히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일이, 지금 이 땅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들 뿐 아니다. 어린 자녀와 떨어져 무더운 방호복으로 무장한 채 격리환자의 치료에 임하는 의료진, 잠재적 메르스 환자들을 대면하며 확진자를 가려내는 일선 보건소의 담당자, 24시간 상황근무를 서며 놓치는 환자가 없는지 조바심을 치는 공무원…
 무책임한 정책으로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은 정부와, 특정한 환자들을 감염원으로 몰아가는 일부의 냉혹한 시선 속에서, 이렇듯 위험과 부딪치며 실질적으로 메르스와 싸우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라고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다만,“우리가 무너지면 방역이 뚫린다”는 절체절명한 사명에 그들은 오늘도 최선을 다해 메르스 확산을 저지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어르신들 말대로,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없었다.
 바이러스 전파의 위험성이야 모두가 알고 있다 해도, 웬만한 질병에 대한 면역력과 백신이 갖춰진 현대의학계에서 우리나라의 풍토병도 아니고 멀리 중동에서 기원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이 이토록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통제 불능한 상태에 이르리라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사스나 신종 인플루엔자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 질병이 확산된 때도 있었으나, 빠르게 대응했을 뿐더러 백신이나 치료제가 공존하였던 것을 비교하였을 때, 치료제가 전무한 메르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몇 배로 크다.
 특히 정부의 공신력 있는 정책이나 대책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감염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어 불안감이 증폭되는 바다. 우리는 지난 해 세월호 참사에서도 이미 이와 같은 좌절감을 느낀 바 있다.‘속수무책’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이다.
 예상 가능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것을 통제가능하리라고 기대할 때에, 국민은 그 나름대로의 생업에 종사하며 개인의 삶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구멍 뚫린 방역과 재난 대응 체계가 이어진다면, 누가 대한민국을 살기 좋은 나라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이 바라는 것은, 단순히‘메르스 없는 세상’이 아니다.
 메르스와 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태가 일어났을 때,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소통하며 국민을 위로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시스템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예산이 바뀐다고 해서 쉽사리 사라지고 만들어지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라, 조건 없이 지속되며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라는 뜻이다.
 그러한 울타리가 완비되어있을 때에만, 메르스와 같은 신종바이러스는 물론 세월호와 같은 재난사고에 있어서 국민이 무정부상태와 같은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이들이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질병확산을 저지하는 이때에, 그들을 도리어‘메르스 바이러스 전파자’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순화하고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실무자들의 희생에 기대기만 하는 주먹구구식의 대처가 아니라, 21세기에 걸맞는 과학적 대응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정부의 행보를 매서운 눈으로 지켜봐야할 것이다./박현규 전주시의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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