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이자 전북대 교수로 활동 중인 엄혁용은 스스로의 인생을 ‘재수’라 이름 짓는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와 대학, 대학원을 다시 한 번 도전해서야 입학할 수 있었고 지금의 교수직 또한 재수해서 들어갈 수 있었던 탓이다.

당시에는 힘들고 어려웠을 과정 과정들은 조각 장르 특성상 잦은 전시가 어려움에도 20회가 넘는 개인전을 갖게 하는가 하면 보다 열정적이고 넓은 시각으로 제자들을 이끄는 등 자양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일까. 작업에 있어서도 재수를 택했다. 익숙한 재료인 나무를 뒤로 한 채 과거 소재인 금속으로 돌아간 것. 17일부터 25일까지 우진문화공간에서 열리고 있는 25번째 개인전은 어떤 면에서 무모한 도전이다.

90년대 초 알루미늄 작가라 불릴 정도로 금속에 천착해왔다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나무에 꽂혀 5년이나 매달려 왔는데, 이제야 좀 안정됐는데 소재를 바꾼다는 건 새롭게 시작한다는 거나 다름없어서다.

직지와 완판본을 주제로 동판으로 풀어내나 바꾸는 과정인 만큼 나무와 금속이 교차된다. 그 중 3m 40cm에 다다르는 대형작에서는 쇠붙이와 목재의 만남을 극대화하고, 한 쪽 벽면에 자리한 5cm에서 20cm사이 여러 크기의 책 1000여 권에는 아내가 병을 판정받은 지 850일 되는 날이라는 서글픈 의미가 배여 있다.

따뜻함과 차가움 등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물성이 빚어내는 새로운 느낌을 주목하는 한편,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삶을 보여준 작가의 진정성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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