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의 딸을 두고 있는 이모씨는 요즘 아침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몇 달 전 새로 바뀐 학교장이 갑자기 벌점제를 도입하면서 아이가 등교를 꺼리기 때문. 신임 교장은 전교생이 100여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벌점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특히 선도부가 쉬는 시간마다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벌점을 주고, 그 결과를 게시판에 공개하자 학생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씨는 이같은 벌점제가 학생인권 침해라며 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에 구제 신청을 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 2년을 넘기면서 새롭게 나타난 풍경이다. 학교 현장이 학생인권에 관한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기 보긴 어려워도 성공적인 첫발을 뗐다는 것이 교육계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로 보인다. 
지난 20일 또 하나의 발자국이 새겨졌다. 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가 2층 독립 건물의 반듯한 사무실을 갖추고 개소식을 한 것. 옛 만성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이곳은 상담실과 교육실은 물론 전시관과 인권체험관까지 갖췄다. 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는 앞으로 인권 상담과 구제, 인권교육, 학생자치 활성화 3가지 방향으로 주력할 계획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2년 맞아
전라북도 학생인권조례는 지난 2013년 7월 공포됐다. 경기도교육청이 2009년 전국 처음으로 제정된 이래 전북까지 오는데 4년이 걸렸다. 숱한 논란을 일으켰지만 학생인권조례는 제정 2년이 된 지금 순항을 하고 있다. 권위주의적인 학교문화에 꾹꾹 참아왔던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학생에 대한 체벌 등 잘못된 악습을 개선하기 위한 전라북도교육청의 노력도 활발하다. 대표적인 것이 학생인권옹호관제도다. 
전라북도 학생인권 조례는 제43조에 학생인권옹호관을 설치하도록 해 학생인권 침해에 대한 상담과 구제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전라북도교육청은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강은옥 변호사를 공개 채용해 각종 구제활동을 적극화하고 있다. 학생인권옹호관의 직무는 ▲인권침해 상담 ▲인권침해에 대한 시정과 조치 요구 ▲제도 개선 요구 등 학생 인권 전반에 관한 상당한 권한을 갖고 있다.
지난 2년간 50건이 넘는 학생인권 침해사건을 조사해 시정조치와 신분상 처분을 요구했다. 학생인권옹호관이 그동안 조사한 내용을 보면 학생에게 양말 물리기, 특정 종교 강요, 체벌, 흡연 강요 등 우리 학교 현장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학교 현장이 성적 지상주의와 입시경쟁으로 두터운 성벽을 쌓으면서 인권 감수성이 설자리를 잃었던 교육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2년간 50건 넘는 학생인권침해사건 조사
전라북도 학생인권조례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과 위험으로부터의 자유, 교육권, 사생활 비밀의 자유, 종교와 표현의 자유, 자치와 참여의 권리, 복지권, 소수학생의 권리 보장 등 학생인권 전반에 대한 폭넓은 규정하고 있다. 이에 학생체벌은 전면 금지됐고, 공공연하게 일어났던 가방 뒤지기도 사생활 침해에 해당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9월 전국 학생 584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북 지역의 응답자 290명 중 체벌을 경험했다고 밝힌 비율은 42.1%로 나타났다.‘직접 때리지는 않지만 오리걸음, 엎드려뻗쳐 등으로 신체적 고통을 주는 체벌’을 자주 또는 가끔 경험한다는 응답도 58.6%에 달했다.
교육계 관계자는 광범위한 인권교육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교육과 제재 등 2바퀴가 굴러야 잘못된 악습의 뿌리를 뽑을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전북학생인권조례에도 학생인권 진흥을 위해 인권교육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학생은 연2시간 이상, 교직원은 연2회 이상 인권교육을 하고 이를 위해 학생인권교육원 설립을 명시하고 있다.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인권교육 선행돼야
그러나 인권교육 강사단 구성에 본격적인 착수를 못한 상태다. 이와함께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토록 하고 있는 학생인권 모니터링과 실태조사도 시작을 못하고 있다. 결국 인권교육 등 학생인권에 대한 광범위한 기반 구축이 선행돼야 인권친화적인 학교문화 만들기가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학생자치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학생은 더 이상 일방적 관리와 지도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성숙한 존재로 함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것. 전북학생인권조례도 제17조(자치활동의 권리), 제18조(학칙 등 학교 규정의 제개정에 참여할 권리), 제19조(정책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전라북도교육청은 이와 관련 학생회실 설치 지원과 함께 일선 학교에 학생회 주최의 행사 보장과 예산 지원을 독려하고 있다.
또한 권위적인 학교문화의 잔재가 남아있는 학교생활규정 개정도 빼놓을 수 없다. 교사와 학생이 협력해 생활협약 제정운동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학생인권교육센터 관계자는 “이번 센터 이전을 통해 인권교육과 상담을 진행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들도 확보하게 됐다”면서“앞으로 센터 내의 인권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지혜기자·kjhw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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