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초상화를 둘러싼 붓과 칼의 숨막히는 향연 속, 우리네 역사가 깊숙이 배어있다.

서철원이 쓴 장편소설 ‘왕의 초상’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13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줄거리를 토대로 하고, 당시 심사위원으로부터 “작가의 주제의식과 시점의 참신함으로 정형적인 사극을 뛰어넘었다”는 평을 얻는 등 일찌감치 주목받아 온 작품이다.

조선 초기 태종 시대, 죽은 아비의 복수를 위해 어진화사가 돼 시해를 예비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여말선초, 고려유민들은 공안정국에 저항하며 목숨을 잃어간다. 태종 이방원의 신임을 받던 도화서 화원 명현서도 조선을 반역하고 고려유민을 도왔다는 의심을 받고 태종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명현서의 딸 명무는 간신히 살아남아 아비의 스승과 몸을 피한다.

 6년 후, 태종어진을 그리기 위한 경연이 열리는데 조정은 화가들을 경복궁으로 불러 모으고 명무도 붓과 칼을 든 채 궁궐로 향한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종 어진에 선택되어야 한다. 왕의 얼굴과 정신을 담는 숭엄한 경연장은 각기 다른 신념과 복수를 품은 자들로 숨 막히는 전운이 감도는데.

서로 다른 왕조에 충성하는 사람들,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조선 초 격동기 역사 속에 정교하게 복원한다. 가령 실제 존재하지 않는 태종어진과 그 제작과정을 실제인 듯 생생하게 풀어내는 한편 고려 유민들의 항거를 묵직하게 다룬다.

긴장감도 잃지 않아 독자를 태종 어진경연장까지 끌고 들어간다. 소설이 실록에 대한 문학적 오마주임을 밝힌 데서 알 수 있듯 ‘조선왕조실록’ 해제에서 문체적 영향을 받았다. 눈에 띄는 대목이다.

경남 함양 출생으로 2월 전북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졸업 예정이며 전업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들만의 전설’ ‘호모 아나키스트’ ‘추림’ ‘칼새’ ‘고놈, 산갈치’ ‘장헌’ 등 다수의 소설을 발표했다.

다산책방. 360쪽. 13,800원./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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