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연물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돌’이다. 어린 시절 장난감처럼 갖고 놀다가 세상을 등질 때 무덤 위에 놓는 등 매 순간 함께하는가하면 일상생활의 도구로 사용하거나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처럼 가치와 쓰임도 다양해서다.

어느 마을이든 관련 설화와 전설이 하나쯤 존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하나 현재까지도 돌을 통해 마을의 역사나 특징을 가늠할 수 있고 그것이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전라북도에도 어느 지역 못지않게 사연 있는(?) 돌들이 산재돼 있지만 일부만 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받을 뿐 대부분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지금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고 개발이 난무해진다면 훼손이 불가피한 가운데 우리네 문화유산을 소중히 간직하려는 움직임이 눈길을 끈다.

전라북도문화원연합회(회장 나종우)가 전북 각 지역의 옛 돌을 조명하고자 펴낸 ‘전북의 돌문화’가 그것이다. 14개 시군의 잘 알려진 것부터 알려지지 않은 것에 이르기까지 발품을 팔아가며 조사하고 실측 및 사진 촬영해 1000쪽에 이르는 장서를 마련했다.

소재지와 관련 연대, 유물 성격, 규격부터 사진, 얽힌 이야기, 연관된 전통문화를 쉽고 간략하게 풀어냈으며 마을 거주민들의 구술까지 더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 중 고창군 대산면에 자리한 ‘벼락바위’는 지형 변화로 잘 보이진 않으나 전설만큼은 고이 간직하고 있다. 아이와 돈을 맞바꾼 아이 엄마가 돈 꾸러미를 세려는 순간 우레가 일어 돈이 흔적조차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 때 녹아내린 흔적이 지금까지도 선명히 남아있다. 비라도 올라치면 슬픔이 가시지 않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고.

부안군 ‘서림공원 암각서’는 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한 혜천에서 비롯됐다. 많은 문인묵객들이 찾아와 서림과 혜천을 찬미하는 시회를 열었을 것이고 시를 바위에 새기기에 이르렀다. 암반에는 19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일부는 부안의 현감이나 군수를 지냈던 분들이고 나머지는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활동했던 지역의 인물들이다. 당시 부안의 풍류 가락과 선비 정신이 집대성된 곳인 셈이다.  

군산에는 역사적 기념비들이 여럿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과한 소작료를 거부하자 농민조합장이 검거, 농민들이 경찰서를 습격했는데 그들을 기리는 ‘옥구농민 항일항쟁 기념비’와 학교와 예수병원 사무원들, 기독교 및 천주교 신자들까지 500명이 나선 ‘3.1운동 기념비’, 1945년 경마장 폭발사건으로 산화한 아홉 의용소방대원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새기려는 ‘의용불멸 위령탑’ 등을 만날 수 있다.

임실 ‘청웅 하중산마을 장승’은 2기다. 한 기는 남자로 도로 건너편 입구에, 한 기는 여자로 마을 서쪽 부근 밭두렁 사이에 있다. 마을 전체가 손이 귀하고 특히 아들을 낳지 못하자 세웠고 20여년 전 도난을 당해 남자 장승의 위치를 옮겼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 장승의 외관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다. 

나종우 원장은 “옛 돌들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다시 음미하는 일은 우리 민족 고유문화의 향기를 밝혀내고 무관심 속에 있던 문화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찾아내 자리매김하는 일”이라며 “책이 전북지역 문화를 가꾸는 자료집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길 기대해본다”고 말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