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발에 대한 통찰은 인생이라는 여정에 다다르고 있다.

박선희가 펴낸 첫 시집 ‘건반 위의 여자(현대시학)’에는 처녀시집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심오한 그만의 세계가 서려있다. 시작은 손과 발이다. 수직에의 열망이 낳은 직립보행으로 발의 일부가 손이 되고 각이 생겼음을 언급 후, 각을 통해 각에 이르고자 한다.

발이었던 손임을 인지, 과거를 되짚고 현재를 바라보는 한편 직립인간이 지닌 위태로움 혹은 경쾌함을 느끼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또 다른 소재로 등장하는 건반과 계단, 하이힐 굽소리는 주요소재를 보다 실감나게 부각한다.

가령 ‘직립하다’에서는 ‘달리고 싶을 때마다 그가 믿는 건 손이다/손이 발이었던 기억으로 건반 위를 달린다/…/여든 여덟 개의 희고 검은 계단이다/…/벼랑 위의 발, 손을 세워 달린다’라며 손이 발이 돼 계단을 내달리는, 건반 위 손의 경쾌함이 곧 발의 위태로움임을 보여준다. ‘건반 위의 여자’에서도 ‘잠시 휘청거리던 여자/지문을 밟고 천천히 음계를 내려온다’고 말한다.

이는 슬픔과 기쁨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인생을 돌아보게 한 다음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넌지시 이른다. 더불어 그리움, 외로움, 상처, 여성으로서의 삶 등 다양한 주제로 확장돼 매일, 매순간 흔들리는 우리네 삶을 속 깊게 끌어안는다.

김제 출생으로 2014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2016년 아르코 창작활동 지원금을 받았으며 수필집 ‘아름다운 결핍’을 출간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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