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비선은 있다 /홍용웅 경제통상원장

  요즘 국민들 입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는 단연 ‘비선(秘線)’일 것이다. ‘몰래 어떤 인물이나 단체와 관계를 맺는 것’- 국어사전의 풀이다. 반대말은 아마 ‘공식 라인’쯤 되지 않을까? 공조직이 국정을 좌지우지해도 좋은 소리 듣지 못할 세상에서 국정농단 하는 비선실세가 존재한다는 건 어이없는 일이다. 100만 국민을 광장에 운집케 한 역사적 현상의 원인은 매우 비극적인 것이지만,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필자에겐 죽비의 내려침 같은 교훈을 준다.
  1. 비선에의 과도한 의존은 권한위임자에 대한 배신이다. 누구나 비선은 있다. 어린 시절 가족사를 회고해 보면 아버지가 공식라인이라면 어머니는 비선 노릇을 많이 했다. 가부장적 질곡의 포로인 장남에게 어머니는 숨통 터주는 역할을 몰래했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의 꼼수도 적정선에서 그쳐야지 본질을 침범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되면 콩가루 집안의 근본 없는 자식으로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어느 리더나 주변 또는 심중에 비선을 지니고 있다. 이들로부터 이런저런 조언을 듣거나 자신에 대한 평판을 귀동냥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비선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판단은 공식 계통을 통해 내려야 하며, 비선의 존재는 최선의 결정을 위한 보조역할에 국한되어야 한다. 특히 공직자의 경우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 사유화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2. 누구에게나 친구는 소중하다. 그러나 리더의 친구관계는 금도를 지켜야 한다. 숨겨진 친구일수록 그 교유관계는 더욱 사적인 것이어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사심 없이 나누고 격무와 긴장으로 쌓인 피로를 함께 해소할 수 있는 건강한 관계말이다. 골프를 치던, 등산을 하던 사생활의 자유지만, 공무 불간섭, 청탁금지의 마지노선을 철저히 지키는 친구가 진짜 친구 아니겠는가?
  3. 다양성이 리더의 생명이다. 모든 사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기 때문에 다양한 시선으로 본 값들을 폭넓게 수렴해야 진실에 가까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아무리 하찮은  의견도 일면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고정된 사람들로 형성된 이너서클이 내리는 결정은 매우 편협해서 진실과 동떨어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 특정 지역, 학교, 직업, 연령대에 편중된 집단의 결정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낯설고 맘 편하지 않아도 다양한 출신과 배경을 지닌 사람을 널리 등용하는 포용력이 리더의 필수조건이다.
  4. 상식과 양심이 리더의 핵심 덕목이다. ‘양식’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좋겠다. 리더는 결정하는 직업이다. 타인에게 전가할 수 없는 고독한 결단이 그의 숙명이다. 이를 결코 회피할 수 없고, 회피해서도 아니 되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100% 책임져야 한다. 결단의 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상식과 양심이니, 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요, 평소 갈고 닦아야 하는 덕목이다. 공직자는 더욱 그렇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조건을 ‘비르투(virtu)’와 ‘포르투나(fortuna)’로 요약한다. 전자가 군주의 의지와 역량이라면, 후자는 시대의 행운이다.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지닌 사람이라도 행운의 여신이 웃지 않으면 군주가 될 수 없단다.
  그러나 오늘날 4차 혁명의 시대엔 행운보다 역량, 소명감, 책임의식 같은 ‘비르투’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번 사태를 현명히 극복한 우리 국민은 장차 한층 수준 높고 까다로운 선구안으로 지도자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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