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를 일컬어 순진하게 멜팅 팟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민자의 물결이 이어져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 수가 증가해도 그 재료들이 예전처럼 융합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펴낸 책 ‘르몽드’ 세계사의 한 구절이다. 과거 미국을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를 녹여내는 멜팅 팟 즉 용광로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반론이다. 현대 미국은 그게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서 멜팅 팟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내용물을 녹이는 항아리다. 흔히 용광로라고 해석하는데 미국의 다양한 이민자 문화가 서로 혼합해 하나의 문화와 정체성을 만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멜팅 팟이 나오게 된 동기는 건국 초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영국을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잘 융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흑인이나 히스패닉, 아시아계는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미국 주류 사회인 백인 앵글로색슨 신교도들이 유럽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한 몸처럼 수용한 것이 유래다.
  그렇지만 지금 현실은 좀 다르다. 미국 내 차이나타운에서 보듯 중국인, 히스패닉, 일본인이나 유대인, 한국인 등 다양한 민족과 문화들이 각자 제 색깔을 내고 있다. 멜팅 팟이라는 용어에서 나타나는 일체가 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장소만 미국일 뿐 출신 국가에 따라 역사와 전통을 지켜가는 게 현 상황이다.
  그래서 분석가들은 현대 미국을 일컬어 멜팅 팟 대신 샐러드 보울 즉 샐러드가 담긴 그릇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한 그릇에 담긴 음식이지만 각각 재료가 지닌 고유성이 다 살아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문화적 모자이크 상태라고도 한다.
  부동산 재벌이자 아웃사이더인 트럼프가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 된 뒤 미국 내에서 인종 간 분열 행태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트럼프가 내세운 불법 이민자 전원 추방,  국경 방벽 설치, 무슬림 입국 금지 등 인종차별적 공약들이 갈등을 부추긴다는 분석이다. 백인우월주의가 때를 만난 것이다. 전국 50개 도시 이상에서 반 트럼프 시위가 벌어지고 이념적 분열, 상호 불신 등 후유증이 심각하다.
  정작 트럼프 본인도 국민들을 향해 인종 갈등을 멈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미국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조화를 잘 이뤄 오늘날 미국 건설이 가능했지만 갈등과 분열이 심해질 경우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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