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은 신령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을 주관하는 사람이다. 무교 혹은 무속신앙으로 불리는 신앙체계의 주역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에서는 가장 오랜 문화이자 전통신앙이다. 비록 지금은 미신으로 치부돼 공식적으로는 타파 대상이지만 그 끈질긴 생명력은 결코 끊어지지 않았다.

우리 역사에서 무당에 대한 언급은 삼국유사에 나온다.

“김대문이 말한 차차웅이나 자충이라 함은 우리말로 무당을 말하며, 사람들은 무당을 통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올린다”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신라 초기부터 무당이 존재했음을 증명한다고 할 것이다. 물론 무당은 부족국가 시대부터 상층계급으로 군림했다. 당시 무당은 군 즉 군주이자 신과의 접촉자이고 그 활동 역시 초인적인 것이었다. 그러니까 제의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실권도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대국가가 형성되면서 제정분리가 일어나고 무당은 이제 순수한 제의의 주재자이자 치료사 그리고 예언자의 역할을 했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유희적 기능도 맡았다. 무당이 추는 춤과 노래는 하나의 놀이이자 풀이로서 오락적 임무를 수행했던 것이다. 굿판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게 민중들에게는 즐거움이기도 했던 것이다.

무당이 된서리를 맞게 된 시기는 바로 조선조다. 성리학 국가였던 조선은 무당을 철저히 탄압했다. 유교적 교리에 맞지 않는 미신이라는 인식이었다. 무당은 제도권 밖으로 밀렸고 사회의 건전한 기풍을 해치는 것으로 매도 됐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여전히 무속은 민중 심지어는 왕실의 여인들에게까지 중요한 신앙체계였다.

요즘 또 무당을 놓고 말이 많다. 최순실과 그의 부친인 최태민이 국정을 농단한데 대해 무당국가니, 무당통치니 하면서 맹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 한 복판에 바로 무당이라는 존재가 버티고 있는 셈이다. 이를 놓고 진짜 무당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원복 무신교총연합회 총재는 “최순실을 무당이라고 하는 것은 무속인에 대한 모욕”이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 했다. 진짜 무당은 힘든 교육과정을 거쳐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데 최순실은 그런 과정을 밟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무당은 기독교나 불교 등 고등종교에 밀려나 미신으로 전락했지만 그 전통은 여전히 살아 있다. 최순실의 무당 파동이 바로 그 증거다. 무교 혹은 무속신앙이 국가를 뒤흔들 정도니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일소에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앙이라기보다는 기층문화 차원서 접근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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