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한글을 배우고 글을 써내려간 할머니들의 글은 맞춤법도 틀리고 문맥도 맞지않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담담한 삶도 거칠고 투박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들의 인생과 글을 그대로 담고자 했습니다.’
 늦깎이 한글교실 할머니들의 인생 손글씨를 엮은 책 『할미그라피』가 나왔다. 

6일 오전 완주 고산면 The 다락에서 할머니들을 모시고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할머니 작가와 가족, 완주군 관계자들이 모여 축하와 기쁨을 나누었다. 

 

미디어공동체완두콩협동조합(이하 완두콩)이 펴낸 이 책은 한글교실로 향할 때면 ‘헐헐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라가는 기분’이라는 이옥지, 공부하는 날 딴 일이 생기면 ‘부아가 나서 죽겄다’는 임순덕 등 뒤늦게 한글을 깨친 할머니 스물 한 분의 손글씨와 그에 얽힌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뾰족하게 깎은 연필 한 자루와 지우개, 공책과 교재를 밥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침침한 눈 비벼가며 비뚤배뚤 눌러쓴 가슴 속 이야기 스물한 편. 그 속에서 무뚝뚝한 남편은 말하는 벙어리가 되고 서울버스 타고 온 파리는 손님이 된다. 에어컨 있는 좋은 세상에서 일흔다섯까지 잘 살고 있노라 하늘나라 어머님께 안부 전하고 학당 가는 아내를 격려하며 늙은 남편은 ‘혼밥’을 자처한다.  
  임실군 청웅에서 태어난 전소순은 보릿고개에 한이 맺힌 집안 형편상 학교에 가지 못했다.열 대여섯 살의 나이에 어렵게 학교에 들어갔지만 한국전쟁으로 학교가 불타는 바람에 다시 ‘죽어라 일만’하고 살았다. 글을 못 배워 ‘연애편지 못쓴 게 제일 서럽다’는 그가 원통한 세월을 시로 써내려갔다. 
  ‘지난 세월이 너무나도/안까워서 운다/내 나이 77에 배움을 알고/서러워서 운다/너무나도 무심하게 세월이/내 가슴에 맺혀운다/배우지 못한 자의 비애는/어띠 그리도 그더란 말인가/생활에 쪽기고/물질에 발목이 잡혀 있을 때/내 청춘 다 지나가 버렸네’<‘세월’ 전문>
 

『할미그라피』는 할머니의 방언인 할매와 캘리그라피의 합성어로 완두콩이 동명의 소식지에 매달 연재하고 있는 기획물이다. 
  이용규 완두콩 대표는 “글을 읽고 쓰는 게 자연스러운 요즘 세대는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고 또 행복한 일인지 잘 알지 못할 것”이라며 “우리가 할머니들의 손글씨에 마음을 뺏긴 건 이 당연한 것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찡하고 아련하고 또 가슴 따뜻한 할머니들의 새로운 날을 함께 응원해 달라”고 덧붙였다. 
 책값 13,000원. www.wandookong.kr. 문의 063-291-8448.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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