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창무극 ‘천명’. 쉽사리 올리지 못하는 대형작을 지역자원으로 소화해 뜻깊었으나, 야외공연의 특성을 살리지 못해 몰입도가 아쉽다는 분석이다.

전라북도와 정읍시가 주최하고 전라북도립국악원, 정읍사국악단, (사)마당극패 우금치가 주관한 창무극 ‘천명’이 지난 12일, 13일 저녁 7시 45분 정읍 황토현전적지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소재, 출연진, 장소 등 모든 면에서 전북의 저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탄핵과 국정농단을 거쳐 새 정권을 마주한 시기, ‘역사는 반복되고 국민들은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메시지의 사건을 택한 건 적절했다. 지역을 대표하는 국악단체인 전북도립국악원과 정읍사국악단은 처음이다시피 협업해 눈길을 끌었다. 우금치까지 더해 출연진 180여명은 연습시간을 조율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시도하고 실현했다.

이는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물리친 정읍 황토현 전적지에서 펼쳐져 생생함과 감동을 더했다. 25톤 트럭 50대 분량 흙을 투입해 만든 무대는 땅으로 울고 웃던 민초들의 삶을 드러내고, 경사와 언덕까지 있어 전투현장의 긴장감을 더했다.

실제 공연에서는 후반부로 가면서 ‘천명’의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전투를 앞둔 전봉준은 ‘민중의 물결에 나를 던지는 것, 이것이 나의 천명’임을 되뇌며 간절하면서도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연이은 총성에 쓰러진 농민들이 다시 일어서 촛불을 드는 장면은 ‘천명은 계속된다’는 걸 강렬하게 보여줬다. 출연진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 또한 박수 받기 충분했다.

그러나 야외공연에 대한 대비는 미흡했다는 게 중론이다. 야외공연의 경우 관객들과 가까이 호흡하며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집중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공간에 맞는 구성, 간결하되 강렬한 내용, 크고 분명한 소리 전달, 충분한 연습이 선행돼야 할 거다.

하지만 세로 90m에 달하는 대형 무대는 밀도를 떨어뜨렸다는 목소리가 높다. 5,60명이 등장할 때도 규모 있게 느껴지지 않았고 인물들의 감정이나 기운이 객석까지 닿지 못했다는 것. 무대가 크다 보니 오케스트라와 방창, 합창은 떨어져 있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했다.

복수의 공연 전문가들은 “혁명의 스케일이 느껴지지 않았고 감정이나 이야기에 빠져들기 힘들었다. 좀 작게 만들었다면 완성도는 물론 출연진들 동선도 줄고 보는 이들도 수월했을 것”이라며 “지휘자가 무대를 보기도 어려웠을 거 같다. 음향도 작았지만 오케스트라가 가까이 있었다면 분위기가 한층 살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시간 20분(쉬는 시간 제외)에 달하는 상연시간은 과하고 강약이 살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한 공연 기획자는 “혁명 전반을 다룬다고 해서 길 필요는 없다. 야외공연이지 않느냐”면서 “반복되는 장면들은 많은데 제대로 된 전투신은 찾아볼 수 없어 다소 지루했다”고 말했다.

짧은 리허설(3일)은 음향, 조명, 무대전환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대사가 안 들리는 경우가 많았고 장면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지 못했으며 무대 앞 오가는 관객들을 통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소리에 대한 조언이 많았던 만큼 대사와 음악을 크고 원활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천명 관계자는 “무대의 경우 현장 그대로의 지형과 지물을 활용하려다보니 커진 거 같다. 날씨가 안 좋고 단체들 상황도 있어 리허설을 많이 못 한 건 사실이다”라며 “그래도 토요일(13일)에는 연주석을 앞쪽으로 옮겼다. 9월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미비한 부분들을 다듬어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나 뵙겠다”고 밝혔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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