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천리장성이라는 명칭은 두 번 등장한다. 먼저 고구려 천리장성이다. 요동 방어선인데 당나라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영류왕 14년(631)기사에 ‘왕이 백성을 동원해 긴 성을 쌓았다. 그 성의 동북쪽은 부여성에서 시작하여 동남쪽 바다까지 1000여리가 되었다’고 나온다. 이 공사는 무려 16년에 걸쳐 진행됐고 647년 드디어 완성을 보았다.
  또 하나의 천리장성은 고려 천리장성이다. 10세기와 11세기에 걸쳐 고려는 여러 차례 거란의 공격을 받았다. 또 여진족들도 동북쪽에서 호시탐탐 고려를 노리고 있었다. 이에 대한 대응책이 바로 천리장성이었다. 강감찬 장군의 건의에 따라 덕종이 1033년 장성 축조를 명했다. 이 임무를 맡은 유소는 압록강 하류 어귀에서 함경남도 동해에 이르는 1000여 리의 긴 성을 11년에 걸쳐 건설했다. 이에 거란이 반발하자 정종은 “성과 목책을 세워 영토를 방비하는 것은 변경 지역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는 당연한 일”이라며 일소에 붙였다.
  고려는 그러니까 국호와 근본 건국정신에서 고구려를 계승 했을 뿐더러 장성 쌓기에서도 고구려를 그대로 본 딴 셈이다. 두 성 모두 북방의 외적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고 또 후일에는 국경으로 굳어지게 된다.
  그런데 고려 천리장성 위치에 대해 새로운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고려사 지리지에 ‘고려의 사방 경계는 서북으로는 당 이래로 압록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은 선춘령을 경계로 삼았다. 대개 서북으로는 고구려에 달하지는 못했으나 동북으로는 그것을 넘어섰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서 압록의 위치가 논란의 대상이다.
  이에 대해 인하대 고조선 연구소가 고려시대 국경선인 천리장성은 한반도 원산만 이남이 아니라 만주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최근 학술대회를 연 연구소 측은 요나라 역사서 요사와 고려사를 대조해 연구한 결과 압록이 중국 요녕성 요하의 지류임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압록강 이남이라는 인식은 조선시대 일부 성리학자 사대주의와 일본의 반도사관이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라는 논리다.
  고중세사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문제는 꽤 복잡하고 시빗거리다. 환단고기가 그렇고 비류백제 요서경략설 역시 중국 내 우리 영토가 있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특히 이 문제는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더욱 민감한 문제가 됐다. 이번 천리장성 위치 문제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더 많은 연구와 검증을 통해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중국 동북공정에 맞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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