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지 전주시의회의장

 빗물이 떨어져 강이 되고 강은 바다가 된다.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순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9년간 한국의 강은 바다와 만나지 못했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경부운하를 시작으로   한반도를 운하로 연결하겠다는 대운하사업을 구상한 바 있었다. 하천정비로 홍수와 가뭄을 예방하고, 건설·관광 사업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예산과 자연파괴에 대한 반발에 부딪치자 이를 대체하여 새로운 사업을 내놓았다. 하천 생태계를 복원하고 일자리를 창출 할 수 있는 친환경 경제 사업이라고 주장한 4대강 정비 사업이다.
 4대강을 정비해 커다란 물그릇을 만들면 그만큼 수질이 개선되고, 가뭄과 홍수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4대강은 맑고 아름다운 강물이 아니라 초록빛의 녹조라떼가 되었고,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썩은 물의 괴물보가 탄생하고 말았다.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진 22조원의 예산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 유지관리에 들어가는 예산도 천문학적이다. 댐과 각종 시설을 유지하는  비용이 5천 억 원 이상 들고 계속 쌓이는 퇴적물을 준설하자면 조 원 단위의 비용이 든다. 이렇다보니 유지하는 것보다 허무는 비용이 더 싸다는 계산이 틀리지 않다.
 더욱 큰 문제는 녹조가 창궐한 강물은 고성능 정수처리를 한다고 해도 식수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녹조는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맹독을 분비한다. 이 독소는 간세포를 파괴하는 발암물질이기도 하다. 미량이라도 장기적으로 먹으면 만성질환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러한 물은  상수원수는 물론이거니와 농업용수로도 쓰지 못한다.
 많은 학자들과 환경보호가, 그리고 그저 자연의 순리를 보고 듣고  알아온 수많은 국민들이 수문을 개방하여 물을 흐르게 하라고 요구했다.
 아무리 약을 뿌리고 강을 휘젓고 산소주입장치를 달아도, 물이 저절로 흐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물이 흐르면 녹조가 번성할 수 없으며 자연적 산소발생으로 자정능력을 회복한다. 집안의 작은 어항 하나만 봐도 당연한 이치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9년이나 시간을 끌게 된 것은, 4대강에 댐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정부는 존립의 의의를 잃는다. 박근혜 정부가 1,700만에 이르는 국민의 촛불 앞에 퇴진하게 된 것은 소통의 요구에 대한 비상식적인 단절과 무관심이 주된 요인이었다.
 급박했던 장미대선을 마치고, 제 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문재인  정부는 4대강의 6개 보 수문을 상시 개방하라고 지시했다. 더 많은 보를 개방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천릿길도 한걸음부터이니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지난 3월, 4대강의 수문 일부를 개방하는 시범운영이 이루어졌었다. 첫 방류 이후 2주 만에 낙동강에는 사라졌던 모래톱이 일부 돌아왔다. 특히 낙동강 모래톱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할 때조차 포크레인으로 무자비하게 준설을 했던 장소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 가지는 부당한 권력은 모래톱을 사라지게 했으나, 자연은 단 며칠 만에도 스스로를 치유하고 제 모습을 찾아간다.
 자연의 주인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부끄럽고, 한편 자연의 생명력에 숙연해진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는 어불성설의 정책은 더 이상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찰랑이는 강물이 먼 길을 내달려 바다에 닿는 순간, 잃어버렸던 자연의 존엄과 산천의 아름다움도 회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희망찬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도 마찬가지다.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원한다.
 민주주의의 반짝이는 물길이 대한민국의 내일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기를 간곡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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