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은 조선시대 국왕의 비서기관이다. 비서실장격인 도승지를 비롯해 정3품인 6명의 승지와 정7품 주서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기관은 단순히 왕명을 출납하는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고된 각종 현안들을 사전에 검토하는 등 여러 가지 기능을 했다. 특히 6조의 업무를 분장함으로써 사실상 국정에 깊이 개입했다. 정종 2년 때인 1400년에 만들어져 1894년 폐지될 때까지 의정부나 6조,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국정의 중추기관으로서 영향력이 대단했다.
승지 중에서도 수석승지인 도승지는 핵심이었다. 도승지는 좌승지 이하 소속 관리들을 지휘하면서 승정원 업무를 총괄 관장하는 위치였다. 왕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직책인 터라 그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조정의 인사권을 두고 의정부의 정승들이나 이조 판서 등과 함께 각축을 벌일 정도였다.
그런 만큼 걸출한 인재들이 도승지라는 직책을 거쳐 갔다. 도승지로 이름을 날린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화려하다. 세종 때 명 재상이던 황희가 도승지였고 성삼문과 신숙주, 유성룡, 이이 등이 모두 도승지 출신이다. 영정조 때 경제전문가로 명성이 높던 체제공도 영조 때 도승지로 국정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런가 하면 정조 때 홍국영은 정3품 도승지 지위에 있으면서도 조정을 마음껏 주물러 성가를 높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거지가 도승지를 불쌍타 한다’는 속담이 있다. 추운 겨울 꼭두새벽에 왕의 부름을 받고 허겁지겁 입궐하는 도승지 모습을 본 거지가 속으로 안됐다며 탄식을 했다는 이야기다. 스스로 불쌍한 처지이면서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오히려 동정하는 경우를 빗대는 속담이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블랙리스트’ 관련 재판에서 도승지를 언급해 주목을 끌었다. 그는 “제가 모시던 대통령이 탄핵을 받고 구속까지 됐는데 비서실장이 잘 보좌했더라면 이런 일이 있었겠느냐는 점에서 정치적 책임을 통감한다”며 “과거 왕조시대 같으면 망한 정권 왕조 도승지를 했으면 사약을 받지 않겠느냐. 백 번 죽어 마땅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무너진 대통령을 내가 보좌 했는데 만약 특검에서 ‘재판할 것도 없이 사약을 받아라’고 하며 독배를 내리면 깨끗이 마시고 끝내고 싶다”고 토로했다.
그의 말마따나 도승지는 막강한 권력만큼 책임도 컸을 것이다. 사뭇 비장하게 들릴 정도로 책임을 통감하는 태도는 당연하게 다가온다. 이런 생각이었다면 왜 현직에서 대통령을 잘 보필하지 못했는지 의아스럽다. 새삼 권력 무상,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등 권력과 관련된 경구들이 실감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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