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이미지는 바로 세계유산이다. 유엔의 전문기구인 유네스코는 전 세계 유산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복합유산 세 가지로 나눠 지정하고 보호한다. 우리나라의 경주역사유적지구나 팔만대장경 등이 바로 이 세계문화유산이다. 유네스코는 하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한다. 평생교육이나 과학기술, 사회적 윤리문제 그리고 포괄적인 지식사회를 위한 정보 구축 등이 그것이다.
  그 유네스코의 이념은 헌장에도 잘 나타난다. 1945년 채택된 헌장에는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므로 평화의 수호 역시 인간의 마음에서 구축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교육과 과학, 문화 분야 국제교류를 활성화하고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자는 게 유네스코의 출발이다.
  그런데 그간의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1980년대는 최대의 위기 국면이었다. 신냉전 시대가 도래 하면서 1984년 미국이 이 기구가 러시아 편을 든다며 탈퇴해버린 것이다. 유네스코가 미국의 외교정책을 비판한 데 따른 조치였다. 이어 영국도 미국을 따라 나가 버렸다. 그런가하면 일본과 싱가포르 당시 서독 등도 유네스코의 운영 방침에 불평과 시정사항을 들고 나오며 기구 탈퇴를 시사했다.
   이렇게 유네스코의 정치적 색채가 짙어지자 각 회원국들은 새로운 방향 정립에 애를 썼다. 1990년대 들어 각국이 협상을 통해 정치적 타협을 모색했다. 이로써 유네스코는 한동안 잃었던 지적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었다.
  최근 유네스코가 또 위기에 봉착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직접적 동기는 지난 7월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 구시가지의 문화유산 등재를 팔레스타인 이름으로 해버린 데 있었다. 미국 국무부는 “이번 결정은 가볍게 내려진 것이 아니다. 유네스코 체납금 증가, 유네스코 조직의 근본적 개혁 필요성, 유네스코의 계속되는 반이스라엘 편견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또 한 번 정치 외교적 전쟁터로 변하고 만 느낌이다. 각국이 역사 해석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치열한 물밑싸움을 벌이며 반목을 거듭하는 현 상황은 평화를 추구하는 본래의 입장과 크게 어긋난다. 이렇게 정치적 이해관계로 오염되면 창설 취지가 크게 빛 바래는 셈이다. 여기서도 힘의 논리는 통한다. 미국이 빠진 그 틈새를 이번에는 중국이 파고들 기세다. 강대국들의 입김에 흔들리는 유네스코를 보면서 냉정한 국제사회의 역학 관계를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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