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설공단 이사장 전성환

최근 ‘선망국’이라는 개념을 접했다. 선진국이 ‘앞서 발전한 나라’라면 선망국은 ‘앞서 망한 나라’를 뜻하는 조어다. 연세대 조한혜정 명예교수는 <선망국의 시간>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나라는 이미 선망국의 시간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비단 나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수도 없이 ‘선진사례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도시를 찾지만, 그런 도시들이 ‘선망도시’가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북해도의 유바리시나 도쿄 근처 다마신도시는 우리나라 지자체가 앞 다투어 벤치마킹을 했지만 지금은 유령도시가 되었다. 
도시는 상품이 아니다. 시민행복을 위한 고유한 삶터이자 시스템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도시는 정형화된 매뉴얼에 따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모든 도시가 이른바 ‘맥도날드화’ 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중심의 넓은 도로, 고층빌딩과 대규모 아파트단지, 대형 아울렛과 복합쇼핑몰, 관광객과 대기업유치를 위한 마케팅과 인프라 구축…. 2~3년 전부터는 대부분의 도시들이 4차산업혁명 관련 산업을 신성장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지역의 특성, 핵심인재 육성. 최적의 마인드 조성이라는 전제조건도 없이 유행처럼 따라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섣부른 벤치마킹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벤치마킹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형태나 제도를 베껴오는 것이 아니다. 성공의 근저에 숨어있는 본질과 원리를 통찰하고  자신의 도시 철학과 고유성에 맞게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호수가 아름다운 도시를 보고 와서 연못을 파는 것은 조잡한 따라 하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자연환경과 시민의 욕구에 맞는 숲과 꽃의 정원도시를 만들기로 했다면, 그것은 올바른 벤치마킹이다.
시대와 문명은 급변하고 있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높게, 더 빠르게’ 라는 산업화 시대의 발전전략은 이제 그 사명을 다했다. 지금은 거대한 이동의 시간, 전환의 시간이다. 조한혜정 교수는 “거대한 전환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이제 모두가 휴가를 떠날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휴가를 떠나야 할 사람은 ‘정치가와 공무원’이라고 진단한다. ‘고장 난 엔진을 밤낮없이 돌리느라 골병이 들어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혁신을 뛰어넘는 ‘전환’이다. 같은 방향에서 더 좋게, 더 효율적으로 고쳐나가는 것이 혁신이라면, 180도든 90도든 방향을 확 트는 것이 전환이다. 전환은 본질적으로 혁명의 DNA를 품고 있다. 전주에서 서울로 가는 완행열차가 KTX나 비행기로 바뀐다면 이것은 교통수단의 혁신이다. 목적지가 같다는 점에서는 근본적 차이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서울로 가기를 포기하고 제주로 가겠다고 하면 그것은 전환이다. 모두가 서울로 향할 때, 다가오는 시대의 징후를 읽고 방향을 바꾸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 바로 전환이다.  
전주시는 민선6기 출범과 함께 한 차례 전환을 시도한 바 있다. 성장, 효율, 개발, 초대형쇼핑몰, 토건사업 등의 관행적인 성장전략에서 사람, 생태, 문화,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등으로 전환을 시도했다. 전환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불러온다. 혁신은 있는 것 위에서 새롭게 하는 것이지만 전환은 방향을 바꾸어 낯선 길을 걷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곳곳에서 문제가 돌출하고 반발이 생겨난다. 이를 돌파하는 힘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가가 대전환의 승패를 좌우한다.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광범위한 합의와 시민들의 참여에 의해 이루어진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일지 모른다. 
 <조화로운 삶>의 저자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는 '계속해서 저장된 썩은 것을 푸짐하게 먹을 것이냐, 이제는 돌이켜 밭에서 갓 따온 싱싱한 푸성귀를 먹을 것이냐'를 선택하는 몫은 스스로에게 있다고 말했다. 좋은 삶의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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