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황혼

오피니언l승인2019.01.07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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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목에는 막창집이 줄지어 서 있다. 오늘도 퇴근 후 막창집 도로를 걷고 있는데 어느 막창집 손님이 나의 시선을 잡는다. 초저녁이라 막창집에는 부부처럼 보이는 노인네 둘만이 지키고 있었다.
숯불구이 불판 앞에 부인은 의자에, 노인은 휠체어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노인이 왼쪽 손을 가슴에 붙이고 있는 폼새로 보아 중풍인 듯했다. 여인은 막창을 가위로 잘게 잘랐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자른 막창을 칼집을 내었다. 그런 후에야 노인의 입에 막창을 넣어 주었다. 노인이 한참동안 입에서 우물우물 씹은 다음에 겨우 넘기자, 그제야 여인은 자신의 입으로 막창 하나를 넣는다. 아마 휠체어에 탄 노인만큼만 먹으려는 모양이다. 초가을 석양에 비친 두 노인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집으로 가는 것을 미루고 양해를 구하며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사십 여 년 동안 함께 살아온 평범한 부부였다. 지난해, 남편이 직장에서 쓰러져 병원에서 얼마 전 퇴원하였으며 부인은 남편의 간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저축한 돈이 없어 남편과 아내가 지급받는 백여만 원 남짓 받는 연금이 생활비 전부였다. 부유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내의 환한 얼굴에는 행복이 넘쳐 보였다. 근처에 좋은 음식점이 많은 데 왜 하필 질긴 막창을 먹느냐는 내 말에 그냥 미소만 짓는다.
그들은 병원비 때문에 얼마 전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십여 년 동안이나 이 자리에서 막창을 먹었다고 한다. 남편은 건강한 시절, 아내와 마주 앉았던 이 자리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는 비싼 택시비를 치루더라도 한달에 한번씩은 꼭 이 장소를 찾는다고 한다.
부부는 단칸방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하였으며 남편은 직장이 없어 막노동일을 하였다. 추운 겨울이나 장마철에는 일거리가 없어 집에서 쉬는 일이 많아 형편이 어려웠다.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일주일 만에 집수리 보조일을 하게 된 그는 동료들과 회식을 한 후 만취되어 들어왔다. 남편의 작업복은 막걸리와 흙으로 범벅이 되어 매우 지저분했다. 아내는 만취한 남편의 옷을 벗겨 얼른 빨래통에 넣고 잠을 청하였다. 다음날, 늦잠을 잔 남편은 허겁지겁 작업장으로 나간 뒤 아침청소를 마친 아내는 빨래통에 기름이 떠 있는 것을 보고 놀라 물에 젖은 빨래감의 호주머니를 뒤졌다. 뜻밖에도 어젯밤에 담아 놓은 작업복이 범인이었다.
그때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고기를 구경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전날 회식 때 아내 생각이 나 자신이 먹어야 할 막창을 곱게 말아 호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왔는데 그놈의 술 땜에 예쁜 아내의 뱃속에 있어야할 막창이 빨래통에 들어가게 되었다. 몇 겹의 휴지로 정성스럽게 말려진 막창에서 달콤한 남편 냄새가 솔솔 났다. 아내는 퉁퉁 불은 막창을 깨끗이 씻어 햇빛에 말렸으며, 오래도록 부엌에 보관하였다고 한다. 그 후 형편이 나아진 부부는 신혼의 추억 때문에 막창을 즐겨 먹었단다.
남이 볼세라 가슴 두근거리며 챙겨 온 호주머리 속의 막창 사랑이 아직도 그대로인 것 같았다. 오늘 먹은 막창이 내일 냄새나는 변이 되어 괴롭힐지라도 평생 동안 사랑해 주었던 남편을 위해서라면 매일 오고 싶다고 하였다. 비록 지금은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초라한 남편이지만 평생 동안 자신을 아껴 준 소중한 남편이었다. 지금보다 더 고통스런 날이 오더라도 따뜻한 추억을 되새기며 살겠노라고 말씀 하셨다.
얘기를 듣는 사이 어느덧 불판 위의 지글거리던 막창은 동이 났다. 아름다운 모습에 취하여 아름다운 사연에 취하여 노부부에게 대접을 하고 싶어 주문을 하려 하였으나 손사래를 쳤다. 하는 수 없이 얼마 되지 않는 막창 값을 내려고 돌아서니 언제 왔는지 주인이 옆에서 웃고 서 있다. 오늘 막창 값은 귀동냥한 것으로 되었다며 한 줌의 막창을 포장하여 건네준다. “돈 걱정하지 말고 언제든지 오셔요. 돈은 할아버지 건강이 회복되어 일을 하시게 되면 받을게요.”
휠체어를 밀고 가는 노인의 모습이 노을 속으로 사라져 간다. 서로에게 깊이 물들어 하나가 된 붉은 황혼이다. /정근식 국민연금공단 인사혁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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