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선 전주대학교 부총장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다. 일제강점기시대에 빼앗긴 우리의 조국 독립을 위해 하나 뿐인 목숨을 초개처럼 바치며 자주독립을 선언한 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의미에서 각계각층에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기념식과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1회성 기념식과 행사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다. 그래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언어, 특히 국어의 로마자표기의 독립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세계는 언어이며 인간은 언어적 존재(home linguisticus)이다. 언어는 인간의 존재의 집이다. 한 나라의 언어와 문자는 그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유지 해주는 근본이다. 따라서 진정한 독립은 언어와 문자의 독립이다. 이러한 언어의 중요성을 인식한 대부분의 점령국들은 곧 바로 식민지국의 언어를 말살하고 점령국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강요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하였던 언어정책 또한 그러했다. 이러한 점령국의 언어정책으로 인해 국제법상 국가로 인정받고 있는 242개국 중 대다수의 국가는 고유의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7,097개의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는 한글을 포함하여 약 180여 종류뿐이다. 이들도 대부분 로마자를 포함하여 다른 국가 혹은 민족의 문자를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순수하게 자신의 문자와 언어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한글과 한국어를 사용하는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6개국에 불과할 뿐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일제잔재의 언어를 우리 언어로 바꾸는 노력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예를 들면,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변경한다든지, 유치원을 유아원으로 바꾸자는 노력이 이러한 일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국제화, 세계화와 더불어 지구촌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세계인과 소통하기 위하여 한글만을 고집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즉 우리의 이름과 지명, 상호명 등을 영문자로 표기하여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기미독립선언서가 선언된 지 100년이 지난 현재 일제 강점기의 잔재인 일본식 ‘국어의 로마자표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성이나 바꾸려는 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행 ‘국어의 로마자표기법’은 모음이 5개 뿐 인 일본어식 로마자표기를 따라  <ㅏ, ㅔ, ㅣ, ㅗ, ㅜ>를 각각 <a, e, i, o, u>로 적기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 시기인 1940년 조선어학회안 이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4차례에 걸친 정부안이 개정되었지만 일본어식 모음표기 방식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우리는 ‘강, 만, 상, 군, 눈, 순, 손, 히’를 gang, man, sang, gun, nun, sun, son, hi로 각각 적고 ‘갱, 맨, 생, 건, 넌, 선, 선, 하이’로 읽히곤 한다. 따라서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표기를 현행 ‘국어의 로마자표기법’에 따라 표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에 따라 영어식으로 적는다. 그렇다보니 ‘권’씨의 경우는 124개의 다른 표기가 사용되고 있으며 곽 109개, 유 103개, 백 72개, 류 67개, 임 70개, 노 57개, 엄 67개, 전 68개, 정 67개, 강 41개 등으로 달리 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루빨리 일제강점기 시대의 잔재인 일본어식 ‘국어의 로마자표기법’을 우리 실정에 맞게 개정을 하여 더 이상 혼란이 없도록 하여 언어의 주체성도 살리고 진정한 언어의 독립을 하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한 국가의 진정한 독립은 고유의 언어를 지키고 배울 때라는 것은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로서 19세기 후반에 활약한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에서 아멜선생님이 한 말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마지막 수업'의 시대적배경은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과 프랑스간의 전쟁인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의 1871년경 알사스와 로렌스 지방의 초등학교이다. 전쟁에서 패한 알사스와 로렌스 지방의 학교에서는 프랑스어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독일어만 가르치라는 명령이 점령국 독일로부터 전해졌다. 프랑스어 교사인 아멜은 마지막 프랑스어 시간에 다음과 같이 얘기함으로써 한 나라의 진정한 주권과 독립은 언어의 독립에 있음을 강변하고 있다. “한 민족이 노예 신세로 떨어졌을 때 제 나라 말을 잘 간직하고만 있다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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