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영 원광대학교 창업지원단 교수 
 
이동 거리가 꽤 긴 지하보도를 열심히 걷고 있었다. 인파들 속에서 내 바로 앞을 걷고 있는 어른 한분에게 절로 시선이 갔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걷고 있다는 표현은 왼쪽과 오른쪽의 양쪽 다리를 사용해 번갈아 걸음을 옮기며 이동하는 것을 뜻하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꼭 양쪽 다리로만 걷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앞의 어른은 목발과 한쪽 다리와 양쪽 팔의 힘을 사용해 부지런히 이동하고 있었다. 익숙한 듯 빠른 걸음속도에도 놀랐지만 나와 그분이 입고 있던 청바지라는 아이템에 대해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다. 대중교통과 걷는 거리를 염두에 두고 굽이 낮은 단화에 청바지를 입은 사용자와 이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한쪽 바지통을 올려 묶은 청바지를 입은 사용자. 목발 사용자들을 위한 조금 더 가볍고 편한 구조의 청바지는 없을까?
  그동안 시장에 드러나는 사용자나 타깃에 속하지 않았던 제한된 신체적 조건과 움직임 그리고 특수한 환경에 있는 사용자의 불편을 해소하거나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개인적 관심이 아닌 사회적 관심에서 접근한 디자인을 사회적 디자인이라 칭하며 추구하는 방향성 중 하나는 디자인된 제품이나 서비스가 선천적 혹은 후천적 요인의 장애가을 지니거나 노약자 및 경제적 취약계층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제품들로 이루어진 우리 주변의 세상은 대량생산에 맞는 표준화와 규격화로 디자인되어 그 기준에 사람들이 적응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빅터 파파넥은 리디자인드 월드(Redesigned World)라는 저서에서 필요에 의한 사용자의 특성과 상황을 공감하고 기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간을 위한 디자인의 중요성을 30년 전에 이미 강조했다. 점차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고 기능적인 제품 사용과 문제 개선을 통한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면서 제작자와 디자이너들도 멋스러움 혹은 스타일과 기능성은 서로 먼 거리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닌 이상적인 연결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다시 청바지로 돌아가면, MIT 공과대학에서 개발한 청바지는 휠체어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용자를 위함이다. 앉아 있는 자세에서 피부와 근육에 밀착된 옷의 압력과 땀을 줄이기 위해 무릎과 허리를 포함한 총 6군데에 온도 감지 센서가 얇은 종이 스티커 형태로 부착되어 있다. 앉을 때 인체의 구부리는 움직임에 따라 허리와 엉덩이 부분에 가로 방향의 유연한 지퍼를 열어 더 늘어나도록 한다. 휠체어 사용자를 중심으로 보면 국내에서도 이들을 위한 회전 옷장이 개발되었다. 옷장에 높이 걸려 있는 옷들은 앉아있는 사람이 팔을 뻗은 반경에 들어오지 못한다. 수직형 옷장을 놀이공원의 회전 관람열차에서 착안해 레버를 통해 360도 회전형 옷장으로 전환하여 어떤 높이의 옷도 눈높이에서 꺼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두 사례는 수익성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적 디자인의 한계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MIT의 청바지는 처음 접근한 사용자 외에도 앉아서 종일 컴퓨터 작업을 하는 직업군, 트럭운전사 등의 앉는 동작이 하루의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수요까지 확대되었다. 회전식 옷장 역시 휠체어 사용자 뿐 아니라 어린아이와 평균키보다 작은 군에 속하는 사용자도 잠재수요로 포함된다. 외관의 스타일과 심미적 요소들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기능성을 최적화한 결과물들은 그 대상을 기존 사용자들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게 된다.
  2019년 기준 인증 받은 사회적 기업의 수는 전국적으로 2100여개에 달한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도 사회적 문제해결을 위한 디자인 공모전과 소셜 캠페인들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양적 지표들이 어쩌면 급속도로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이룩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옷장과 청바지라는 명칭과 사실(Fact)보다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맥락(Context)이 어떤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사회 구성원에 대한 이해와 문제점에 대한 접근과 같은 보이지 않는 가치관이 어떠한 디자인 개발 과정을 거쳐 보이는 사물로 구현되고 활용되어 불편함 해소에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알차게 들어있는 맥락이 있어야 앞의 양적 지표들이 지속적인 경쟁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