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호흡하는 역사의 숨결

이병재 기자l승인2019.05.19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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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청도 마을
<1>어청도 마을
  역사를 아는 것은 선조들의 경험을 통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역사하면 역사책이 떠오르고 어렵다는 생각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통해 얻는 지혜는 이론과 더불어 옛사람들이 걸었던 그 길 위에서 그들처럼 바람과 햇빛 속을 거닐고 풀내음도 맡고 빗소리도 들을 때 더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옛사람들의 흔적은 사람이 살았던 곳이면 어디나 존재한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고장 여기저기에 있다. 작은 마을 속에 우리의 선조들이 삶으로 체득한 지혜의 원리가 가득하다. 주력 문화관광상품을 개발하며 큰 것에 중점을 두다가 작고 소중한 것을 놓칠 때가 많다. 특히 군산은 문화관광 부분에서 근대역사에 중점을 둠과 동시에 역사가 삶으로 스며있는 마을에서 역사의 숨결을 호흡 할 때 교육이 이루어지는 체험적인 문화관광이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군산은 10면, 16동, 1읍으로 이루어져 있다. 군산은 바다와 금강 과 만경강의 하구언과 다양한 섬과 평야와 산으로 구성되어 있어 마을의 이야기가 다양하다. 또한 공룡 발자국과 패총부터 시작하여 일제 강점기 근대역사와 새만금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긴 여행이 마을마다 스며있다. 그래서 마을에 역사의 숨결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고, 코로 향기를 맡으며 그 숨결을 호흡하려 한다. 그 호흡한 역사의 숨결을 8회에 걸쳐서 연재한다. 
 
  첫 번째 마을 여행지는 어청도다. 고군산군도의 끝 섬으로 중국산둥반도에서 새벽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들린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육지에서 뚝 떨어져 있다.
  군산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 반 정도 항해를 하면 도착한다. 출발 당일 해무가 끼어서 배가 질주를 하는데도 회색 물감 통속에 머물러 있는 거 같다.  해무가 살살 걷히면서 보이는 것은 상괭이가 헤엄치며 가끔씩 내미는 꼬리와 갈매기 몇 마리가 띄엄띄엄 멀리 날으는 모습이 보일 뿐 사방으로 끝없이 동그란 수평선이다.
  한참을 항해하다 수묵화인 듯 보이는 푸른섬! 중국의 제나라 사람 전횡 장군이 한나라 유방에게 쫓겨 동쪽으로 망명을 떠나 항해에 지쳤을 즈음 멀리 보이는 섬이 반가와 “어! 푸른섬이다!”해서 어청도라고 이름이 지어졌다는 말이 실감나게 반가운 푸른섬이다. 
  배에서 내려 능선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하얀 옷에 빨간 모자를 쓴 눈부신 등대가 푸른바다를 등지고 서 있다.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1912년 3월에 대중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만든 유인등대이다.
  도구는 누가 만들었나 보다는 어떻게 사용되어지는가가 더 중요하다. 어청도 등대는 만들어질 때부터 지금까지 서해안 서북항로의 어두운 뱃길에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에는 커다란 소리로 뱃길을 인도한다.
▲ 어청도 등대. 사진=채승훈
                
  빛과 소리로 바다를 항해하는 어선의 길잡이 등대를 뒤로하고 두 번째로 만난 것은 어청도 봉수대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미군기지에 공문을 보내야만 가능했던 곳인데 통신기지 담장을 따라 직접 갈 수 있게 되었다. 기지의 철창 담을 끼고 좁은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도무지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구불구불한 숲길 따라 도착한 당산 꼭대기, 나무가지 사이로 봉수대의 몸체가 보이기 시작하더니만 햇살과 함께 드러난 온전한 봉수대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다.
  높이 2m, 폭 3.6m 석축으로 된 건강한 모습의 봉수대 고려 의종 3년에 만들어져 조선 숙종 3년에 폐지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529년 동안 성실히 임무를 다한 뒤 뜨거운 불을 피웠던 자리에 따사로운 햇빛을 가득 담고서 342년 동안 쉬고 있다.     
▲ 봉수대 전면
           
  세 번째 찾아간 곳은 치동묘이다. 제나라 수도 임치의 동쪽에 있는 묘라는 뜻이다. 중국은 묘라고 하고 우리나라는 사당이라고 한다. 중국 한나라 유방에 의해 쫓겨난 제나라 사람 전횡은 BC 202년 망명을 떠났다.
  왕의 자리까지 올랐던 전횡은 부하 500여명을 이끌고 동쪽으로 목적지도 없이 항해하다 육지에 대한 목마름이 가득했다.
  항해가 지칠 즈음 보인 감격의 섬을 "어! 푸른섬이다"라고 했단다. 그래서 어청도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어청도의 물은 바닥에 있는 작은 돌도 보일 정도로 맑다. 누구라도 "어! 맑은 물이 있는 섬"이라고 지었을 것이다.
  백제시기부터 어청도민들은 전횡을 위한 치동묘를 지어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보령 외연도에도 전횡 사당이 있다. 문화의 이동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하고 물처럼 흘러 주변을 적시며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간다. 학자들은 전횡의 무리가 철기 기술을 가져왔다고도 추측을 한다.
  담양 전씨들은 전횡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기며 군산시 옥구읍에도 전횡 사당을 만들어놓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 치동묘
                             
  역사속 사건으로 남은 흔적과 구전 된 어떤 이야기는 기록보다 더 강한 진실을 담고 있다. 구전은 역사이다. 팩트이기 때문이다. 기록은 승자의 것이다.
/문정현 (사)아리울역사문화대표

이병재 기자  kanada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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