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연 정치부

 

정동영, 전북 출신 최초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를 지낸 명실상부한 정치거물이다. 유성엽,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를 쓰고 있는 차세대 호남 대표주자다. 한 사람은 정치인생의 꼭지점을 찍었고 다른 한 사람은 꼭지점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양웅불구립(兩雄不俱立)이라 했던가. 요즘 여의도 정가에서 두 거물의 애증관계가 관심의 대상으로 부유하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동영 대표는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민선4기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했다. 창당 초기 전국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하던 열린우리당은 광역단체장으로 김완주 전북도지사 한명 당선에 그치고 말았다. 당시 유성엽 원내대표도 전북도지사 후보 경선전에 뛰어들었지만, 정 대표는 김완주 후보를 전폭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유 원내대표는 낙천했고 2년의 공백기에 들어갔다. 두 사람의 관계는 증(憎)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정치여정을 시작했다. 정 대표는 17대 대선, 18대 총선(동작을), 19대 총선(강남을)에서 연거푸 낙선한 반면, 유 원내대표는 18대, 19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양웅(兩雄)이 다시 만난건 2009년. 전주 완산갑과 덕진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동반 당선된 신건·정동영 의원은 유성엽 의원과 함께 무소속 3인방을 구성, 민주당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애(愛)의 기간이다. 그러나 이도 잠시. 무소속 3인방은 함께 민주당 복당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반성문 내용이 미진하다는 이유로 유성엽 의원만 복당 불허된 반면 정동영·신건 의원은 민주당에 복당했다. 증(憎)의 도발이다. 이때 “막내가 복당 버스에 타지 못했다”는 정동영 의원의 한탄은 지금도 여의도 정가에 회자되고 있다.
이렇게 다시 헤어진 두 사람은 또다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유 의원은 무소속으로 19대 국회에 입성한 반면, 민주당 복당에 성공했던 정 의원은 강남을에 출마,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유 원내대표가 차곡차곡 자신의 정치여정을 쌓아온 반면에 정 대표는 ‘험지출마’의 소명에 부응하려다 풍찬노숙을 거듭하게 된 것이다.
이후 2015년 관악을에서 보궐선거가 펼쳐지게 되자 정동영 대표는 다시 민주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관악을에 뛰어들었지만 2위 정태호 민주당 후보에 밀려 3위를 기록, 동반 낙선하게 되면서 ‘야권분열’의 책임의 멍에를 지게 되고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된다.
정 대표는 고향인 순창으로 낙향해 ‘복흥산방’ 칩거생활에 돌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정 대표를 다시 정치현장으로 이끌어 낸 것은 다름아닌 유성엽. 두 사람의 질긴 인연은 쉽게 끊어지기도 단단히 엮이지도 않는 대목이다.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유 원내대표는 안철수 전 대표와 함께 국민의당 창당에 앞장섰고 당시 복흥산방에 칩거하고 있던 정 대표가 정치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레드카펫을 깔아줬다. 모든 각본은 정·유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치밀한 전략을 짰고 이를 멋지게 실행에 옮기면서 대히트를 쳤다. 결국 정 대표는 본인이 꿈에 그리던 정계에 복귀하게 되었고, 국민의당은 돌풍을 일으키고 호남 28석 가운데 23석을 석권했다. 호남석권은 전적으로 두 사람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두 사람은 각종 현안에서 뜻을 함께 해 오면서 전북발전을 도모했다. 애(愛)의 복원이다.
그러나 그 기간도 오래가지 못했다. 2018년 보수세력과의 통합에 반대하던 의원들이 민주평화당을 창당하면서 정동영 의원은 조배숙 의원을 박지원 의원은 김경진 의원을 당대표로 밀게 되었고 결국 조 의원이 당 대표로, 장병완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는 중간지대 합의가 이뤄졌다. 당시 유성엽 의원은 내심 원내대표를 희망했지만 조배숙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서 원내대표는 자연스럽게 광주·전남 몫으로 돌아갔다는 게 후문이다. 증(憎)의 질투다.
결국 두 사람에게 정면충돌은 작년 8월 전당대회에서다. 당시 박지원 의원은 ‘나를 포함해서 박·정(동영)·천(정배)은 전당대회에 나서지 말자’고 제안했지만 정 대표가 거부, 유성엽 의원과 일전을 겨루게 되었다.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쥐게 된 정동영 의원은 여의도 정가에 화려한 복귀를 기대했지만, 1년이 가까워지는 지금까지 1%대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 정 대표의 정치적 미래를 더 이상 담보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증(憎)의 심화다.
최근 일련의 행보를 보면 정동영 대표의 정치여정 가운데 무소속과 낙향의 세월에서 도우미를 자처했던 유성엽 원내대표가 ‘더 이상은 안되겠다’고 작심한 듯하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6월 전개된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총 16표 중 11표를 획득하며 낙승했다. 다수 의원이 유 원내대표를 선택했던 것. 이때 정동영 대표는 전남 출신 황주홍 의원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두 사람의 애증(愛憎)관계는 더 이상 복원이 불가능한 ‘회자정리(會者定離)’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 했다. YS와 DJ의 관계처럼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호남 대표로서 차기 대권을 거머쥐기 위한 ‘거자필반(去者必返)’의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전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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