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l승인2019.10.31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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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화 국민연금공단
 
 
감 따러 안 온다고 성화이신 시어머니 등살에 가고 싶지 않은 맘 가득안고 남편이랑 시댁으로 향하는 일요일, 흐린 가을날은 비 왔다가 바람 불고 다시 햇빛 나는 것이 내 맘보다 더 변덕스럽다.
 우리가 서울에 살 때는 혼자 잘만 하시고 택배로 보내주기도 하시더니, 가까이 이사 온 후 부터는 주말마다 오라 가라 하신다. 쌀 가져가라, 나물 가져가라, 김치 담아 놨으니 가져다 먹어라 하신다. 도시에서는 흔한 게 나물이라 조금씩 사먹으면 그게 이득인데 가지고 와도 잘 해먹지 않고 썩혀 버린다고 부부싸움만 하게 되는 시골의 푸성귀와 어머님 표 반찬들이다. 보고 싶어서 그러려니 그 마음 십분 이해가다가도 빨래며 청소며 아이들 뒷바라지까지 산더미 같은 집안일 뒤로 하고 가는 시골길은 시어머니 얄미운 맘이 가득하다.
 시골집 마당에 한그루 있는 감나무의 감을 따기 시작했다. 작대기로 막 후려 칠 수도 없고 정성을 들여 따야 하는 감이다. 보통 노동이 아니다. 천개는 달려 있는 것 같다. 목을 하늘높이 쳐들고 정성을 쏟아 감을 땄다. 바람이 불어 홍시가 툭툭 떨어져 뒤통수에 감물을 들였는데 시어머니가 그러신다. 많이 따서 너 친정도 가져다주고, 서울 사는 막내딸에게 택배도 부쳐주고 곶감 만들어서 내년 여름 시아버지 제사상에도 올리자고. 마트가면 일이만원도 안하는 과일이다. 엄마 고생 하는 게 싫어하는 막내딸은 택배비로 사먹으면 되는데 왜 사서 고생이냐고 되레 큰 소리지만, 그래도 시어머니 맘은 그게 아니었나보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신혼집에 오신 어머니가 나의 처녀적 일기장을 읽으셨다고 한다.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던 무렵의 일기를 보고 마음이 아파 밤새 울었다며, 살면서 무슨 잘못을 해도 내 딸 이려니 생각하고 보듬어야 되겠다고 작정하셨단다. 객지에서 아이 셋 낳고 키울 때 세 아이 산후조리 다해주시고, 급한 일 생길 때 마다 애들 봐달라고 부탁하면 당신이 할 수 있을 때 까진 해주고 싶다며 먼 길 마다 않고 달려와 주셨던 어머니셨다. 그 어머니는 어느새 아흔이 다 되어가는 노구라 도움을 받아야하는 처지가 되셨고, 애들 키우며 직장생활 바쁜 며느리는 자기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운 나이가 되었다. 가까이 오고 나니 더 소원해지고, 전화도 자주 안하여 깍쟁이 며느리가 되어 간다. 그래도 항상 너들만 애들 잘 키우고 잘살면 된다고 말씀하셔서 그러려니 하고 무심해 지는 게 얄팍한 며느리 마음이었나 보다.
 고맙다가 얄밉다가, 또 안쓰럽다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거리는 항상 그만큼이었다. 아홉 번 잘 하다가도 한 번  잘못하면 돌이키기 쉽지 않고, 부당하다고 목소리 높여 말하지 못해 가슴에 앙금으로 쌓아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연락 잘 안하고 살아도 그만인 그런 관계로 어느새 이십 삼년이 흘러왔다.
 감을 상자에 담고 차가 무겁게 실어 돌아오려니 어머니 굽은 등이 유난히 눈에 뛴다. 대문가에서 항상 같은 모습으로 어여 가라고 손 흔드시는 어머니는 허리가 하루가 다르게 굽어 지고 있었다. 세월이 훑고 간 얼굴은 마른행주 꼭 짜놓은 듯 자글자글하다.
 눈에 어른어른 어머니 모습이 작아지고 없어질 때 까지 시골집을 바라보다가 죄송한 마음에 속절없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자식에게 제일 맛난 거 먹이고 싶은 부모 마음. 감 하나에서 수도 없이 정성 나듯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닌 게 우리 부모님들 마음이다.
 깊어가는 가을하늘 감은 붉어지고 어머님 사랑은 익어간다. 자식이 그 사랑의 깊이를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감 깎아줄까 따라다니며 물어보고, 포크로 찍어줘야 하나씩 입에 넣는 우리 아이들 생각 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내가 그 깊이를 몰랐듯이 내 아이들도 모를 것이지만 어느날 문득 깨닫게 되겠지. 스며들 듯 알아 지는 게 부모자식간의 사랑의 깊이니까. 어머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더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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