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통한 귀여운 모습과 앙증맞은 사이즈, 거기에 특색있는 색깔까지 품고 있는 다육식물은 이제 대한민국 가정에서 꽤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식물이 됐다.
하지만 작고 귀엽다고 해서 우습게 보면 곤란하다. 사막이나 고산지대처럼 극한의 지역에서 잉태된 다육식물은 어려운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만의 적응법을 통해 수많은 종을 탄생시킨 '작은 거인'이기 때문이다.
이 작은 거인에게 인생을 건 또 다른 '작은 거인'이 있다. 부모님의 뒤를 이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내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진 청년농업인 성혜원(25)씨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편집자주

전북 완주군에서도 한참을 달려 꼬불꼬불한 신작로를 거쳐야 만날 수 있는 고즈넉한 비닐하우스가 청년농업인 성혜원씨가 꿈을 키워가는 터전이다.
앳된 외모와 다정한 말투를 지녔지만 다육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이미 베테랑 농사꾼의 면모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검은 앞치마를 입고 수 천개의 다육식물을 꼼꼼히 살피는 그의 손놀림은 야무지기만 하다.
처음부터 다육식물을 키우는 농부가 되겠다고 마음먹진 않았다. 혜원씨의 첫 꿈은 프로 골퍼였다. 운동을 좋아했던 소녀 혜원씨는 일찌감치 싹을 알아본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해 프로 골퍼의 꿈을 키워나갔다.
오전엔 학과수업을 받고 오후엔 골퍼의 삶을 살던 혜원씨에게 생각지도 못한 불청객이 찾아왔다. 부상이었다.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빛과 그림자처럼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지만 상황은 심각했단다.
허리와 골반을 비트는 동작이 많은 골프의 특성상 골반과 허리부상은 치료를 해도 쉬이 낫지 않았다. 프로 골퍼라는 꿈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오던 혜원씨는 깊은 상실감에 빠졌단다. 재활치료를 이어갔지만 골퍼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감이 들었다.
혜원씨가 운동과 치료에 전념하는 동안 부모님도 다육농장 운영과 매장운영을 동시에 진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아버지는 다육식물을 대중화시킨 1세대 중 한 분이어서 언제나 새롭고 진귀한 다육식물들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도 매장 운영을 통해 사람들에게 다육의 매력을 알리는데 주력하셨다. 마냥 운동을 쉬는 것도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지 않아 어머니를 도와 매장일을 거들었다. 그러다가 스며들듯 다육식물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면서 늘 봐왔던 다육이지만 직접 매만지고 관리를 하고, 고객들에게 소개를 하면서 스스로 공부에 나서보니 더욱 친근하고 재밋었단다. 아버지의 빼어난 안목으로 들여온 희귀품종이 많아 절로 공부가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프로 골퍼의 꿈에서 다육을 키우는 농부로서의 삶으로 선회했다. "운동은 충분히 했고,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취미로도 할 수 있지만 식물을 키우는 일은 평생 같이 할 수 있겠다는 메리트를 엿보면서 긴 고민 없이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고된 농사일을 자식이 잇는다는 것을 걱정하실 법도 한데 부모님은 무한 지지로 혜원씨의 부담감을 덜어줬다. 혜원씨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인터넷 활용이 더딘 부모님을 대신해 인터넷 배송을 과감히 실천에 옮긴것도 혜원씨의 아이디어였다. 20살 때 첫 인터넷 판매를 계획했던 혜원씨는 당시 다육식물을 온라인 쇼핑으로 파는 문화가 정착되기도 전에 미리 가능성을 점찍었단다.
"다육식물 자체가 기르기가 까다롭지 않고, 물이 없어도 최장 한달 이상은 거뜬히 버티는 강한 생명력을 가졌기 때문에 한국의 빠른 배송 시스템과 맞물린다면 충분히 승산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개인사이트로 시작했지만 너무 품이 많이 들고 운영이 까다로워 지금은 잠시 식물관련 플랫폼에 입점해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과도기일 뿐, 결국은 자신의 브랜드를 내 건 사이트에서 정성껏 가꾼 다육을 팔려는 계획을 한칸 한칸 채워가는 중이다.
다육식물에 인생을 걸기까지 부상과 좌절도 많았지만 그 모든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다육식물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 때문이라고. 혜원씨는 "여타 다른 식물들은 꽃이 피고 지는 텀이 매우 짧지만 사시사철 즐길 수 있다는 매력이 있구요, 그 외에도 독특한 외관과 또다른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아 즐겁습니다. 집에서도 쉽게 번식이 가능한 점도 큰 매력이죠."
현재 혜원씨 농장에서 다루는 다육식물의 종류만 1천 종류에 이른다. 모든 다육이 소중하고 애틋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다육은 '하월시아'라고 말한 혜원씨는 그 이유에 대해 자신의 안목으로 골라온 첫 수입개체임을 꼽았다.
"다육 중에서도 돌연변이체에 속하는데요, 다육도 무늬가 화려하고 다양할수록 가격도 오르고 가치가 상승하는 특징이 있어 그 특징에 가장 부합하는 다육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도 매력이 넘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아이에요."
농장일이 매일 행복으로 가득찼다면 좋겠지만 결국은 생업과 직결되어 있고, 농사일이라는 것이 '잡일'의 연속이라 지루하고 단조로운 농사 전반의 과정에 대해 익숙해 지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고 혜원씨는 고백했다.
"농장 운영일을 하다보면 하루종일 잡초만 뽑거나, 풀약을 치는 일이 다반삽니다. 결국은 잡일의 연속이라 처음엔 너무 어려웠죠. 부모님을 돕기만 했을땐 몰랐던 어려움을 직접 농장을 경영해보며 실감하고 있습니다."
농사꾼으로서 5년차에 접어든 혜원씨는 이제서야 시작점에 선 것 같다고 말한다.  교배에서 성체가 되어 꽃을 피우는데 까지 보통 2~3년이 족히 걸리는 다육처럼 더디지만 알차게 성장하고 있는 혜원씨의 마음 속에선 두 번째 꿈도 함께 싹트고 있다. 바로, 본인이 다육을 통해 아픈 몸과 맘을 치유 받았던 경험을 많은 사람과 나누는 '원예치료사'가 되는 것.
이미 전북대에서 관련 과정을 신청해 공부를 이어갈 계획을 착실히 꾸려나가고 있는 혜원씨는 다육이 가진 사랑스러운 기운을 원예치료학과 접목해 자신처럼 좌절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 따뜻한 치료사로서의 삶도 같이 꾸려가겠다는 것.
아버지가 싹틔운 다육식물의 대중화를 넘어 이제는 '성혜원표' 다육식물 세계를 창조하고 싶다는 야망(?)넘치는 혜원씨가 만들어갈 그 세계는 또 얼마나 푸르를지 벌써부터 기대감이 다육 속 수분처럼 차오른다. /홍민희기자·minihong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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