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돌

오피니언l승인2020.08.26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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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식 국민연금공단

여행을 가다가 낯선 풍경을 보았다. 아름다운 빛을 내는 흑수정과 같은 몽돌이다. 수많은 몽돌이 넓은 해변을 이루고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는 매끄러운 모습이 눈이 부셨다. 몽돌은 수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어르고 달래며 하얀 거품을 내고 있다. 거친 파도를 부드럽게 달래주고 있었다. 직접 만져보지는 않았지만 몽돌은 분명 단단하고 둥글둥글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몽돌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지도 그런 모습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군가 그 많은 돌을 그곳에 옮겨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마 깊은 골짜기에서 바윗돌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홍수를 만나 갈라지고 쪼개져서 냇가로 흘러들었고, 냇가에서 부딪히고 깎여 강으로 굴러와 지금의 자리에 터전을 잡았을 것이다. 제 몸이 부서지고 깎이는 고통을 견뎌내 단단해지고 둥글게 된 몽돌을 보니 생명이 없는 돌이지만 대견스러워 보였다.
 몽돌처럼 둥근 것은 미학이다. 원은 모든 다각형의 완성된 결과이다. 나는 날카로운 각이 없는 원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만나는 사람마다 특성이 다르다. 깊은 골짜기 큰 바윗돌 같은 사람도 있고 날카로운 각이 있는 삼각형 모양의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상처를 입기도 하고 날카로움에 찔려 큰 충격을 받기도 한다. 날카로운 각은 혀가 되기도 몸이 되기도 한다. 내 삶에서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둥근 원을 동경해 왔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둥근 몸으로 상대를 비껴가고 감싸줄 주 아는 사람을 동경했다.
 바닷가에서 본 몽돌에서 오래 전 함께 근무했던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남자인데 그리움이 생기는 연유는 무엇일까. 멀대같은 키와 우락부락한 외모로 본다면 호위병처럼 바다를 지키고 있는 선돌을 닮았을지 몰라도, 그는 분명 몽돌이었다. 하루 종일 화를 낼 줄 모르고 직장동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퇴근 시간 이후에도 직원에게 배려하는 모습이 분명 몽돌의 모습이었다. 직장생활에서 필요한 것은 동료에게 양보와 배려하는 마음인데, 그에게 그런 모습이 있었다. 그와 같이 근무하는 동안 화를 내는 것도 다른 직원이 그를 비난하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요즘 가끔 직장생활이 낯설다. 산골짜기에서 홍수를 만나 갓 태어난 큰 바윗돌 옆에 서 있는  느낌이다. 갈수록 조여 오는 실적경쟁 탓인지 양보보다는 자신의 이익이 앞서고 배려보다는 자기의 주장이 앞선다. 먼저 양보하면 다른 사람에게 양보를 받을 수 있으련만, 나 역시 요즘 들어 지나치게 내 이익에만 매달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몽돌을 닮은 그와 잠시 근무를 했다. 그는 직원이었고 나는 부서장이었다. 그와 8개월 남짓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다. 그전에도 같은 사무실에 근무했지만, 부서가 달라 다른 층에 근무해서 그를 알길이 없었다. 그와 함께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정기감사 통보를 받았다. 감사는 서너명이 일주일 동안 하는데, 사소한 실수 하나까지도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세밀히 본다. 감사는 받는 것보다 준비하는 일이 더 바쁘다. 업무보고 자료에 수감자료까지 준비하려면 일주일 이상을 밤낮으로 고생해야 했다.
 내가 새로운 사무실에 부임한 지 한달이 되지 않아 정기 감사통보를 받았다. 당시 나는 처음 행정업무를 맡았다. 실무부서에서만 근무하다보니 행정 업무에 경험이 없었다. 게다가 전임자는 업무 현황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감사 준비에 애로가 많았다. 준비와 경험이 없으니 서둘러야 했다. 해당 부서에서 자료를 받고 통계를 확인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준비해야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했다. 게다가 나는 전산까지 자유롭지 못했다. 부서 담당과장도 대리도 내 업무에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미진 업무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내 업무를 도와달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나는 기초자료가 모두 확보되자 자료정리를 그에게 부탁을 했다. 나와 달리 그는 행정부서에 오래 근무하여 경험이 많았고 전산작업도 빨랐다. 그의 도움 덕분에 감사를 무난하게 받았고, 그는 몇 달후 다른 지역으로 전출을 갔다. 나는 그와 몇 달동안 함께 일하면서 몽돌의 둥글둥글한 여유를 보았다. 
 지난 주 바닷가에 갔었다. 모래 해변이었는데 군데군데 몽돌이 있었다. 몽돌 하나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어 왔다. 사무실에 두고 싶어서였다. 몽돌을 보면 내 고정된 시각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끔 책상위의 몽돌과 눈맞춤을 한다. 튀어나온 내 모서리가 보일 적마다 몽돌을 보며 둥근 미학을 새긴다. 해가 저문 사무실은 고요하다.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몽돌을 본다. 값비싼 흑수정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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