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이던 여행을 하면서 그림 그리다 죽고 싶다. 병원에 드러누워 시간을 보내느니 죽더라도 자유롭고 싶다.”(2013년 5월 18일)

2011년 작업을 위해 전주에 내려와 산성마을에서 생활하다 타계한 화가 장호의 마지막 1년을 담은 에세이집이 나왔다.

<나를 닮지 않은 자화상: 화가 장호의 마지막 드로잉>(창비)은 2014년 타계한 화가 장호의 그림 에세이집이다.

2013년 5월 구강암 판정을 받고 이듬해 6월 세상을 떠나기까지 화가가 쓰고 그린 일기와 그림 일부를 모아 시간 순으로 엮었다.

제1부 ‘어서 달개비꽃을 그리고 싶어’에는 화가가 병을 알게 된 직후 도망치듯 지리산으로 떠났다가 투병을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기록을 담았다.

암 치료의 공포와 진료비 걱정으로 가득하던 화가의 마음이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꼿꼿하고, 제멋대로 자라지만 생명력을 잃지 않는 들풀을 그리며 점차 변해 간다. 마침내 그 마음은 다음 계절에 개화하는 ‘달개비꽃을 그리고 싶’다는 의지, ‘건강해져 다시 오면 될 일’이라는 희망으로 바뀐다.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쳤다. 효관이 울며 당장 병원 가자 하고 기홍 형 포스 있게 병원 가자 하고 대수 논리적으로 병원 가자 하고 의성 말없이 병원 가자 하고 두성 욕하면서 병원 가자 하고 창원 형 생각대로 병원 가자 한다”(2013년 5월 21일)

제2부 ‘나를 닮지 않은 자화상’에는 투병이 시작된 이후의 병실 풍경과 자화상을 모았다.

수술로 얼굴의 일부를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나를 닮지 않은 자화상’으로 명명하면서도 거듭하여 자신의 얼굴을 관찰하고 그리기를 통해 투병에의 의지를 다잡는다.

제3부  ‘우린 별’에는 화가가 죽음을 예감하고 임종 직전까지 그린 그림들을 모았다.

화가에게는 또 다른 심장과도 같았을 손을 그리며 절망을 이기고, 사랑하는 아내와 딸의 모습을 기록하면서 보낸 하루하루가 담겼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린 그림은 간혹 거칠고 흔들리고 선이 끊기기도 하지만 화가 김환영이 짚었듯 그 ‘숨길 같은 선’에서 펜을 쥐고 사투하며 마지막까지 그림 그리는 이로 남아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한 화가의 간절함이 전해진다.

“아주 중요한 얘기를 나의 각시가 했다. 오늘 회진 시간에 의사 선생들이 가망이 없다고 했단다. 그동안 생활한 것들을 돌아보면 여적 병원에서 들은 얘기 중에 가장 놀랍고 충격적인 소리였다. 그러나 바꿔 생각하니 나를 생각으로부터 한순간 해방시켰다. 네 목숨은 내가 결정한다.”(2014년 6월 17일)

김제에서 태어나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서울민족미술인협회 소속으로 노동미술위원회에서 현실참여미술 활동을 했고 2005년부터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작품마다 자료 수집, 연구, 현장 답사를 통해 등장인물의 희로애락까지 공유하고자 했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한국적 정서를 탁월하게 표현하며 우리 아동 문학의 주인공들을 그렸다. 그림책 『달은 어디에 떠 있나?』로 2009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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