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제시 만경읍에서 육계농가를 운영하는 김영섭씨는 일주일 전 6만7000마리를 모두 살처분시켰다. 철저하게 소독하고 방역수칙도 준수하면서 농가를 운영해왔지만, AI 발생 농가 기준 3km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7만 마리 가까운 닭들을 모두 처분해야 했다. 문제는 정부나 도에서 살처분 보상이나 휴업 배상에 대해 언제쯤 이뤄지고, 얼마나 보상받을 수 있을지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보상이 진행돼도 실제 피해보다 적게 산정될 수 있는 걱정도 있어 답답한 상황이다.

전국적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되면서 이에 따른 살처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방역대책인 ‘예방적 살처분’에 대한 반발도 커지고 있다.

AI가 발생한 농가를 기준으로 3km 반경 내 모든 가금류는 ‘예방적 살처분’이 이뤄지고 있는데, 다른 대안 없이 거리를 기준으로 무조건 살처분하려는 태도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잇딴 살처분으로 인해 수급 불안 문제가 생기면서 달걀 값 인상 등 서민 물가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달걀 가격 안정화를 위해 6월 말까지 신선란과 계란 가공품 등 8개 품목, 5만톤에 대해 관세를 면제하기로 했다.

특히 신선란은 설 전에 수급 상황을 고려해 60만톤 물량에 대한 수입도 진행하겠다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에도 전국 곳곳에서 산발적인 AI 감염이 지속되는 등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애꿎은 양계 농가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

25일 전북도에 따르면 24일 기준 전북에서 살처분된 가금류는 총 79농가 379만 마리다.

김영섭씨는 “예전에는 AI 발생 농가 기준 반경 500m 내에 있는 농가들에 대해서만 예방적 살처분이 이뤄졌는데 갑자기 거리가 3km까지 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가들의 몫이 됐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방역을 위한 살처분은 공감하지만, 별다른 이상 증상이 없다면 반경 3km 내 농가들에 대해선 상황을 관찰한 뒤 처리가 이뤄져야 한다”며 방역대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예방적 살처분에 대한 농가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예방적 살처분 기준 재검토를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상 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상황이다.

가축전염병 예방법 제4조에 의하면 시·도지사 및 특별자치시장 소속으로 지방가축방역심의회를 둬 가축전염병 긴급방역대책의 수립과 시행을 심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 동법 20조에 따라 시장·군수·구청장은 병성감정이 필요한 경우 시행규칙이 정하는 범위에서 살처분을 유예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특수상황’일 경우에만 살처분 유예검토를 중앙에 건의할 수 있고, 건의하더라도 모든 결정은 농림축산식품부가 하고 있어 지자체에서 별다른 방안은 없는 상태다.

도 관계자는 “관련법에 따라 중앙에 건의사항을 전달할 수는 있지만, 결국 정부의 방침에 따를 수 밖에 없다”며 “다행히 현재 도내 AI 발생 상황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만큼, 방역에 신경쓰겠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최근 달걀값 한판에 6610원을 돌파하는 등 가격이 크게 급등한 만큼, 도민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물가 관리에 신경쓰겠다"고 덧붙였다./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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