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립국악원(원장 염기남)이 조직 내 갑질 실태를 알아본다며 실시한 설문조사가 오히려 ‘갑질’ 아니냐는 비난을 사고 있다.

국악원은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교육학예실, 공연기획실, 창극단, 관현악단, 무용단 단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내용은 ▲지난 1년 동안 갑질(불합리한 대우)을 당했던 경험 여부 ▲갑질을 경험했다면 가해자의 직책 ▲지난 1년 동안 경험했던 갑질의 내용 ▲갑질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갑질을 한 가해자에 필요한 조치 ▲갑질 근절을 위한 방지대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직장내 갑질 조사에 당연히 물아야 할 사항이지만 단원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가해자의 직책’을 묻는 조항이 편파적이라는 것이다.

단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해자의 직책을 ▲실단장 ▲직책단원(지도위원 등) ▲동료 또는 선·후배 3개의 직책으로만 한정했기 때문이다.

국악원 운영에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는 원장과 사무국이 ‘가해자’ 조사 대상에서 빠진 것은 또 다른 갑질이라는 반발이다.

실제 원장은 국악원의 인사와 예산을 총괄하는 자리이고 사무국 또한 공연의 기획과 방향, 여기에 따르는 예산의 배분, 그리고 단원들의 근태까지를 모두 관리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래서 원장과 사무국이 갑질의 유혹에 빠진다면 그 여파는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다.

실제 내부에서는 사무국에 의한 갑질 의심 사례가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A 씨는 “갑질이란 설문조사에 나와 있듯이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우월적 지위에서 비롯되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상대방에게 행하는 부당한 요구나 처우’라면 그 우월적 지위의 최고는 원장과 사무국이다”며 “이들이 빠진 설문조사이기에 원장과 사무국이 내부를 통제하기 위한 의도로 진행 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B 씨도 “2년 전 국악원에서 책임자급에 의한 갑질이 발생했지만 그 처리 과정에서 또 다른 갑질을 봤다”며 “원장과 사무국을 가해자 대상에 넣은 갑질 조사를 다시 해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염기남 원장은 “이번 설문조사는 단순히 건전한 직장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어떠한 의도도 없고 이에 대한 불만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조사 문항을 사전에 노조와 공유한 만큼 개선책 등 대안을 모색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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