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의 역사를 ‘피의 역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영국으로부터 아일랜드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북아일랜드 6개 주가 빠지면서 끝없는 갈등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와 보복, 유혈시위 등 갈등 과정은 심각하게 돌아갔다. 다행히 1998년 벨파스트 합의(굿 프라이데이 협정)으로 갈등이 봉합되기는 했으나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처럼 위태로운 지경이다. 
  아일랜드와 영국 간의 불편한 관계는 뿌리 깊고 또 복잡다기하다. 본래 아일랜드는 역사적으로 앵글로색슨이 아닌 켈트족이 세운 나라다. 하지만 영국은 1534년 헨리 8세의 뜻에 따라 아일랜드를 침공해 손에 넣었다. 이후 1801년 영국은 아일랜드를 완전히 자기 나라로 합병했다. 
  문제는 종교였다. 영국은 성공회 즉 개신교였고 아일랜드는 가톨릭의 나라다. 영국의 개신교도들은 아일랜드로 와 가톨릭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차별과 억압에 시달리던 아일랜드인들은 수시로 저항했고 급기야 전쟁까지 벌였다. 드디어 1921년 아일랜드는 남부 26개 주만으로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독립했다. 북부 6개 주에는 영국인들이 많이 거주했기 때문에 아일랜드와의 통합 독립국을 거부했다. 
  이후 북아일랜드에서는 피의 투쟁이 이어졌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아일랜드인들과 영국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개신교 영국인들 사이에 유혈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아일랜드인들은 민족주의자, 영국인들은 연방주의자로 불린다. 
  얽히고설킨 북아일랜드 문제는 결국 1998년 벨파스트 합의로 안정을 되찾게 됐다. 당시 아일랜드는 북쪽 6개 주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함으로써 기나긴 북아일랜드 갈등은 일단 봉합된 것이다. 
  그런데 북아일랜드 평화가 영국의 브렉시트로 인해 다시 위기에 처했다. 아일랜드가 EU잔류를 고집하면서 영국과 국경 분쟁이 일어난 것이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국경을 맞대게 된다. 그러면 사람이나 물자가 이동할 때 입국 수속과 통관을 해야 한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치다. 영국은 이에 북아일랜드 협약을 파기할 것이라고 위협하는 중이다.
  북아일랜드는 유럽의 화약고다. 그 피의 역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영국과 EU가 충돌하는 마당에 미국이 개입했다. 영국에 대해 협상을 계속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영국 내부에서도 국제 협약 파기에 대해 논란이 많다고 한다. 좀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민족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이슈인지 북아일랜드가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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