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리 미술평론가
   대한민국은 공식적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의 곳곳에 근·현대화 과정에서의 상처들이 오롯이 남아있다. 하얀 가면의 제국, 우리 안의 사대주의, 서구인의 뒤틀린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그로 인해 형성된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 세계는 이미 한국의 경제적·문화적 강점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지만, 막상 우리 자신을 톺아보면 허탈한 구석이 많은 서구의 문화를 사대하는 것은 아닐까.
   공립미술관 기획전의 대다수가 미술의 다양성과 독창성이라는 가치를 확보하지 못하고 서구의 박제된 문법을 추종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한 세계적 기획전은 이미 판이 뒤집혔다. 그들이 말하는 변방, 특히 아시아 현대미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자체로 버틸 재간이 없다. 막상 우리만 그것을 모르고 있다.
   아시아는 제국주의 식민으로서 근대를 맞이한 아픔을 갖고 있다. 현대화의 과정은 급물살처럼 격동했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간과하고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도 아시아 현대미술은 서구의 모더니즘적 사고에 기대고 있지만, 다른 궤적을 그리며 변화하고 성장해 왔다. 이제는 강력한 힘이 생겼고 이미 수많은 스타일의 작품이 존재한다.
   모더니즘의 종말 이후, 서구미술이 갖는 메커니즘에 대한 일방적 추종은 더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아서 단토(Arthur coleman danto)가 말하는‘예술의 종말과 미래’라는 개념은 미술이 역사적 방향 감각을 잃고 미아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미술가들 스스로 미술을 시각적인 문제가 아닌 철학의 문제로 사유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종말을 맞은 것은 한 양식이 다른 양식들에 미적으로 우월하다는 양식의 경계가 무너진 것이다. 
   코디 최는“서구문화의 개울에서 끝없이 헤엄치다 보면 그 강의 시작이 어디이고 줄기는 어디에서 왔는지를, 그리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잊어버린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에서는 빨간 사과와 파란 사과가 동시에 열릴 수 있다. 태양이 많이 비치는 쪽의 사과는 광합성 작용으로 그렇지 못한 쪽의 사고보다 더 빨간색을 띠게 된다. 하지만 이때 빨간 사과만을 본 사람은 사과는 빨간색이라는 관념을 갖게 된다. 사회의 헤게모니적 의식이 집단행동 양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문화라는 사실을 간주해 보면, 우리는 역사라는 거대한 시간의 강 속에서 그 원인과 이유를 찾아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했다. 
   이는 서구문화의 역사적 기초와 뿌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양의 문화 예술이론들을 부문적으로 접하면서 그와의 관계성을 찾으려 했던 우리의 억지스러운 노력에 대한 반성하는 성찰을 촉발하는 지점이다. 이제부터라도 주체적 시각의 미술 언어로 프레임을 만들어 가야만 한다.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을 짜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타자에 의해 정의된 현대미술이 아니라, 자신감을 느끼고 우리를 드러내는 ‘자기 정의’에 집중할 것을 제안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사유와 실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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