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

   우송(雨松) 박인현(朴仁鉉) 선생은 1980년대 수묵화운동의 총아로 우산을 변용해 자연의 기운생동과 인간의 생로병사·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유명한 화가이자 교육자이다. 2015년, 선생은 아름다운 동상골 절경과 단애(斷崖)가 절묘하게 어울려 있는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젊은 미술학도에게 창작발표 공간을 제공하면서 동상골 사람들과 예술향을 나누기 위해 미술관을 만들었다.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로 33년 동안 재직한 선생은 정년퇴임(2022년 8월)을 하면서 제자 우암(雨?) 문리(?李)에게 미술관을 물려주었다. 미술관에서는 우송 선생의 귀한 뜻을 이어 미술가들이 체류하면서 창작하고 발표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지역민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계속해갈 것이다.
   또한, 미술관 특성화 사업으로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를 펼쳐가고자 한다. 지도리는 문을 쉽게 여닫을 수 있게 해주는 경칩의 둥근 중심축을 말한다. 이 프로젝트는 아시아 미술을 전북에 불러들이고, 전북미술이 아시아와 세계로 나가는 야심 찬 걸음이다. 이는 기획전시과 예술적 담론이 탁상공론에만 그치지 않고 현장성 있는 연대를 추진한 것. 전북지역과 아시아 각국의 현대미술 현장을 시간과 공간 차원으로 연결해서 보자기처럼 묶으면 틀이 되고 펼치면 장이 되는 열린 미술판을 깔려는 의도이다.
   모더니즘 종말 이후 서구미술이 갖는 메커니즘의 일방적 추종은 시류에 뒤진 행위이며, 원님 행차 뒤에 나팔 부는 격이다. 사또는 이미 떠났다. 이제는 타자에 의한, 혹은 타자로서 아시아가 아니라 확고한 자신감으로 내밀한 ‘자기 정의’에 집중하길 제안한다. 이는 서구문화의 역사적 기초와 뿌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와 억지스럽게 관계성을 찾으려 했던 자발적 반성이며 동시대 한국미술이 지향해야 할 가치일 것이다.
   아직도 대다수 미술관은 미술의 다양성과 독창성이라는 가치를 확보하지 못하고 서구의 박제된 문법을 추종하고 사대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모른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세계적 시류는 이미 판이 뒤집혔는데 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변방, 특히 아시아 현대미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버틸 재간이 없다. 막상 우리만 그것을 모르고 있다. 필자가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을 읽기 위해 2022 베니스 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를 탐방하면서 다시 한번 극명하게 체감한 사실이다. 동시대 미술은 사회와 정치적인 부조리 속에서 받은 상처나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형식에 담지 않고 자유롭게 쏟아내는 날것의 향연이다. 
   예술은 현장의 아우라(Aura)를 통한 감동이 생명이다. 인생에서 감동이 없다면 사는 게 아니라 생존만 하는 것이다.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인간은 일상에서 충분히 깨어 있는 상태로 살지 않는다. 예술의 힘을 빌려 깨어나고, 그것을 느낄 때 활성화된다. 중세에 역병이 돌면, 사람들은 태피스트리로 창을 가리고 성서를 읽었다 한다. 21세기에 전염병이 돌 때 우리는 집에서 넷플릭스를 봤다. 이제는 리모컨을 잠시 내려놓고 예술 현장이 내어주는 풍성한 생명감을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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