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설이다. 훈훈한 덕담이 오가는 새해지만 유독 정치권만은 냉랭하다. 복합적 경제위기로 올해 경기는 더 나빠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지만, 여야 정치권은 경제난 극복이나 민생 안정은 뒷전인 채 정쟁만 이어가고 있다. 진영 논리에 갇혀 정치 양극화는 갈수록 골이 깊어간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한국이 세계 민주주의 주요 19개국 중 정치 분열이 가장 심각한 국가로 꼽혔다. 지난해 미국의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과의 갈등 정도를 묻는 질문에 한국은 매우 크다또는 크다고 응답한 비율이 90%에 달해 조사국 중 1위였다.

개혁적 보수 성향으로 한국 현대정치사를 써온 전북 익산 출신의 김덕룡 전 국회의원은 지금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볼까.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그의 사무실 덕린재를 찾았다.

당을 떠나 현실 정치와는 거리를 둔 지 오래라면서도 그는 정치권을 향해 왜소한 정치가 아쉽다고 쓴소리를 냈다.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희망을 주어야 한다인화(人和)’하는 대범한 통합의 정치를 당부했다.

개혁적 보수 성향으로 한국 현대정치사를 걸어온 전북 익산 출신의 김덕룡 전 국회의원을 만나 반목과 갈등을 이어가는 오늘 정치 현실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대담은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김 전 의원의 사무실 '덕린재'에서 이뤄졌다. /사진=전라일보 
개혁적 보수 성향으로 한국 현대정치사를 걸어온 전북 익산 출신의 김덕룡 전 국회의원을 만나 반목과 갈등을 이어가는 오늘 정치 현실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대담은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김 전 의원의 사무실 '덕린재'에서 이뤄졌다. /사진=전라일보 

진영 간 갈등과 반목을 정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봐야 하나

정치는 그 자체로 국민에게 미래 희망을 줘야 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또 시장경제 체제에서 사회적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정치는 왜 이렇게 왜소하고 치졸한가. 나도 정치했던 사람으로 원죄가 있어 비난만 할 수는 없지만, 여야가 정책을 두고 비전을 제시하며 경쟁관계가 되어야지 파멸시켜야 할 적으로 보고 적대관계가 되는 것은 큰 문제다. 또 언제부터인가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정치보복이 관행처럼 되는데, 이러면 대치와 반목이 계속될 수밖에 없지 않나. 최근에 문제가 되는 팬덤 현상,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국민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이 그 팬덤에 휘둘리는 것은 옳지 않고 나쁘다.

 

보수가 정권을 잡아 새 정부가 들어선지 8개월, 집권 2년차다. 윤석열 대통령의 첫 해 국정운영을 평가한다면

인간은 경험을 통해 많은 지혜를 얻는다. 정당이나 국회 경험 없이 정치 시작한 지 1년 밖에 안 된 사람이기에 좀 서툴더라도 당분간 이해를 할 수밖에 없다. 스포츠에서도 경험이 부족한 긴급 투입된 선수에게 큰 기대를 하는 것은 욕심이지 않나. 다만 0.73%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인데 첫째는 국민통합에 관심이 적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대통령제가 승자독식이라고 하지만 너무 독식으로 가서 갈라진 국민을 더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 둘째는 인선의 아쉬움이다. 나와 가깝고 편한 사람만 찾을 게 아니라 폭넓게 인재를 써야 한다. 검사 출신이 중심인 인사는 이제 그만뒀으면 한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협치가 절실해 보이는데, 윤 대통령과 야당이 아직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집권 여당이지만 지금은 국회에서 열세인 제2당이잖나. 정책을 실현하려면 입법이 돼야하고 야당의 협력이 필요한데 국민통합이나 야당과의 협치에 관심이 없다는 건 정말 안타깝다. 새 정부 출범하고 첫 해 110개 법안 중에 15개 정도만 통과됐다고 하는데, 여당이 집권 세력으로서 국가경영에 막강한 책임을 가지고 협치를 위한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검사 출신 대통령 입장에서 혐의가 있다고 보는 야당 대표를 직접 대면하기가 곤란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이재명 대표가 자신을 내려놓고 야당을 이끌었다면 극한적인 여야 대치는 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드는데... 우리가 민주화운동 할 때는 군부 출신 인사들하고 낮에는 죽기살기로 싸우다가도 저녁에는 만나서 식사도 하며 대화했는데, 요새는 여야 간에 사적인 술자리도 안 한다 들었다. 여하튼 오늘의 정치를 보면 너무 왜소하고 삭막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새해 선거제도 개혁·개헌이 화두다

승자독식의 정치를 멈추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제왕적 대통령중심제와 지금의 소선거구제는 거대 양당의 대결정치를 조장할 뿐 아니라 사표를 양산하고, 3의 정치세력이 만들어지고 성장할 수 없도록 돼 있지 않나. 당연히 개정돼야 함에도 정치권이 그동안 이해관계 때문에 제대로 논의조차 안했다. 19대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개헌을 약속받았는데 흐지부지되어 실망스러웠다. 대통령도 제안을 하고 국회의장과 여야도 모두 관심을 갖는 만큼 이번 기회에 전반에 걸친 개정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늘 그랬듯이 또 여야가 아전인수식으로는 안되고, 처음부터 허심탄회하게 백지상태에서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진영을 떠나 편향되지 않게 구심 역할을 할 수 있는 경륜있는 원로회의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지금처럼 첨예한 대치가 지속되는 때 진영을 떠나 가감 없이 국정에 대해 비판하고 대안을 마련한다면 우리 정치가 좀 선진적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한반도 위기가 고조된 상황이다. 보수 정치인이면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과 지난 정부에서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지내며 남북관계에 역할을 해왔다. 조언을 한다면

남북 평화 유지를 위해 제일 중요한 상대는 북쪽이다. 북한의 일거수 일투족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남북관계를 개선시켜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 화해에 초점을 맞춘 것은 옳았다. 그러나 안보취약점을 보강하지 않고 너무 쉽게 달려간 측면은 있다. 그렇다고 최근 무인기 침투와 관련해 현 정부가 전임 정부의 탓으로 몰아가는 것도 보기 좋지 않다. 남북관계는 첫째, 내일 통일이 되더라도 오늘의 안보는 철저히 한다는 일관된 원칙으로 대화와 협력이 열려 있어야 한다. 둘째,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북한의 핵은 우리에게 가장 위협적이다. 후손들까지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북한이 비핵화를 해도 정권의 안정이 확보되고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주어야 한다.

 

지난해 초 자랑스러운 전북인을 수상했다. 고향 전북은 어떤 의미인가

타향살이를 오래하다 보면 고향 까마귀만 만나도 반갑다는 이야기가 있다. 까마귀는 길조가 아니고 흉조다. 그런 흉조를 봐도 반갑다는 건 그만큼 고향에 대한 정이 각별하다는 의미다. 중학교 3학년을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유학했다. 외롭고 그리움이 늘 있다. 정치를 하면서 고향이 아닌 서울에서 지역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제 선거구가 서초였다. 서초구는 전북사람이 제일 적은 지역이기에 참 힘들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많은 전북인들이 뭉쳐 저를 많이 도왔다. 항상 고맙다. 우리 부모님이 고향의 논을 유산으로 조금 물려줬는데, 내 아들도 자기가 농민의 아들이고 전북의 자손인 것을 깨닫게 해주고 싶다.

 

새만금사업법과 새만금특별자치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전북도약의 발판이 마련됐다. 문민정부 당시 새만금사업 추진 지원을 했던 입장에서 이후 비전을 어떻게 보나

30년 동안 진전이 없을 때 전북 정치권이나 전북인들이 부족했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새만금 12천만 평은 늦은 만큼 4차 산업혁명 시대 흐름에 맞게 쓰라고 남겨놓은 소중한 땅이 되었다. 30년을 준비해 시대에 맞는 땅으로 만들 기회라고 긍정 회로를 돌려 기업과 교육기관 등을 유치해 제대로 키워야한다. 전북이 새로운 문명, 새로운 한류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본다. 디지털 기술과 농생명, 식품, 바이오 같은 기업을 유치하고 이들이 기업하기 좋게 세제 혜택 등의 지원을 해줘야 한다. 또 지역이 균형발전을 하려면 교육이 중요한데, 새만금의 넓은 땅에 유수의 대학캠퍼스나 교육기관이 이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석유 경제시대 이후를 대비해서 중동의 오일머니를 유치하는 방법도 구상할 수 있겠다. 새만금특별자치도는 아직은 선언적 의미다. 실효성을 갖도록 법안을 보완 개정하는데 전북 지역구 10명의 의원과 전북 출신 정치인들의 힘을 모아서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덕룡은 누구인가

1941년 익산 오산면이 고향이다. 서울 경복고를 나와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으나, 총학생회장 당시 6·3 굴욕외교 반대 투쟁을 주도해 구속되면서 제적당했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해 상도동계의 핵심인사로 활동했다. 군사 정권 당시 민주산악회와 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발족해 활동하며 민주화운동을 펼치다 옥고를 치렀다. 1988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서초를 지역구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 후 17대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

김영삼 문민정부에서 정무1장관으로 두 차례 임명됐다. 당시 고향 발전을 위한 새만금사업 추진 지원과 전북 출신 공직자의 인사 불이익 방지, 전북장학숙 건설과 장학금 지원 등에 힘썼다.

한나라당 부총재와 원내대표를 역임했다. 18,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개혁적 보수나 양심적 보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을 맡았고, 이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지내며 평화,통일, 번영을 위한 남북관계 개선에 힘을 보탰다.

현재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과 민주화추진협의회 이사장,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30년 동안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이사장을 지내면서 해외 750만 동포와의 다양한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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