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경 문화기획자
최은경 문화기획자

 

                                                                          최은경 문화기획자

“잘 죽는 것도 오복 중 하나여!”사람들이 이 땅에 태어나 이생에서 누리다 가고 싶은 행복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마음 편히 몸 건강히 남을 위해 좋은 일도 할 만큼 넉넉하게 살다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 저 생으로 가는 것, 그걸 우리는 흔히 오복이라 하고 그런 죽음을 두고 호상이라 한다. 

영화 <미지수>는 <가시꽃>, <현기증>, <팡파레> <봄날>등을 통해 인간관계 안의 어두운 세계를 조명했던 이돈구 감독의 신작이다. 기나 긴 팬대믹시절을 보내고 4월27일부터 시작된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작으로 선정되어 관객들과 한창 만나고 있는 중이다. 

영화 <미지수>는 크게 두 개의 공간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물들 간의 갈등과 등장인물의 내적 갈등을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펼쳐진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지수(권잎새 분)는 헤어진 애인 우주(반시온 분)가 자신의 집 화장실에 친구 영배(안성민 분)의 시체를 가져다 놓으며 일어나는 이야기와 한편에서는 좁고 차단된 치킨집 주방에서 닭을 연신 튀기며 비 오는 날이면 유독 까탈스럽게 배달을 하지 못하게 하며 틈만 나면 우주선 발사 뉴스에만 미친 듯 집착하는 기완(박종환분)과 그 기완을 안타까움과 숨막힘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듯 바라보는 아내(양조아 분)의 이야기를 오가며 전개된다. 

영화 <미지수>에서 감독은 두 개의 다른 이야기를 한 화면 안에 불쑥 던져놓으며 마치 잘 정리되지 못하는 인간내면의 혼돈의 상태를 날것으로 보여준다. 감독은 처음에는 헤어진 연인의 집에 허락도 없이 막 감당하지 못할 사건들을 몰고 들어오는 우주처럼, 기껏 불러놓은 배달원에게 배달을 할 치킨봉투를 낚아채고 내어놓지 않는 기완처럼 무례하다. 관객은 자신의 집에 버젓이 놓여있는 낡고 더러운 우주의 신발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지수처럼 배달원과 남편 사이에서 말리지도 붙잡지도 못하며 어찌할 바 모르는 기완의 아내처럼 의도치 않은 상황들에 놓이게 되며 당혹스럽고 불편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두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이어지며 미완의 변주곡처럼 느껴지던 각각의 인물들 안의 깊은 슬픔과 맞닿으며 결국 안쓰러워지고 휘말리듯 흐느낀다. 

감독은 영리하다. 너무나 일상적인 공간인 치킨집과 화장실이라는 제한된 현실적 공간과 언제까지라도 알 수 없는 미지수같은 광활한 우주라는 공간을 주연들의 이름으로 가져오는 디테일한 재미의 요소를 곳곳에 두고 아직은 대중에게 생경한 얼굴의 지수와 우주는 그런 의도를 잘 읽어내고 혼돈과 낯설음을 극대화시키는 캐미를 준다. 반면 비가 오지 않음에도 빗소리를 듣는 기완을 붙잡고 제발 숨 좀 쉬자고 말하는 기완아내(양조아 분)의 절실한 대사와 아들의 여자친구 지수가 “어머니에게도 오빠가 자주 찾아오냐” 는 질문에 지수를 밀치며 베란다로 쫓아가 총을 겨누며 현실 너머 자신의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 버리는 신애(윤유선 분)의 짧고 격렬한 눈빛과 행동은 두 개의 단편 같던 영화를 개연성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시키며 관객들의 의문을 자연스럽게 풀어준다.

영화 <미지수>는 마치 백화점의 쇼윈도우 같은 웰빙 추구사회에서 그닥 웰빙하지 못하고 살아가다 어쩜 이미 오래전부터 구축되어진 웰다잉할 수 없는 사회구성원의 예기치 않은 죽음과 그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자신의 문 안으로 들어가 버린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과 그 고통의 관계와 결별하고 회생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사실 지상에 호상이란 있을 수 없다. 그건 그 죽음과 무관한 관계 밖 존재의 표현이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불특정 다수와 끝없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 죽음과 어떻게든 연결고리가 생기고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 결국 그 누구에게도 호상이라 명명할 만한 죽음이란 하늘의 별따기 같은 일일게다. 더군다나 충분히 살아보지 못한 자의 죽음이라면 말해 무엇하리.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이들의 개인적 죽음이 많았다. 여전히 미결로 남겨져 있는 이태원참사, 사실 최근만의 일은 아니다. 기나 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억울한 젊은 죽음들은 생겨 왔었다. 마치 오래도록 명명되지 못한 채 셀 수 없이 많이 떠돌고 있는 우주의 행성들 마냥 그런 죽음들이 우리의 곁을 맴돌고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런 아픈 죽음들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매일 일어나지 않는 우주선 발사장면을 작은 핸드폰으로 매일 틈만 나면 보는 기완(박종환 분)처럼 중요한 약속이 있어 그만 퇴근한다는 우주를 기어이 미지막 배달을 시켜가면서까지 열심히 주어진 일에 충실했던 기완과 미처 뿌리칠 수 없어 기완의 부탁을 들어준 우주도 결국 그날의 빗 속에 잠겨   우주복을 입은 채 떠돌며 또 다른 세상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Beyond the Frame :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슬로건처럼. 영화 <미지수>가 웰빙이란 틀을 깨고 웰다잉까지 가능한 호상(아름다운 마무리)을 기대할 수 있는 오복 갖춘 영화로 이번 영화제를 통해 수없는 관객의 마음에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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