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과 전주 3·1운동, 옥구농민항쟁, 조선어학회사건, 전주 518민주화운동 같은 역사는 우리에게 상처가 되어 옹이처럼 가슴에 박혀 있다.

이 사건들은 숱한 이들의 한숨과 눈물, 흐느낌과 절규, 피와 목숨을 내어준 덕에 자랑스러운 역사로 아물었지만 정작 온몸을 던졌던 사람들은 온갖 풍상 속에서 조금씩 사라졌고 잊혀져 가고 있다.

최기우 극작가가 이들을 소환하는 다섯 번째 희곡집 ‘이름을 부르는 시간’을 펴냈다.

희곡집은 ‘들꽃상여’과 ‘거두리로다’ ‘1927 옥구 사람들’ ‘수우재에서’ ‘아! 다시 살아···’ 로 엮어냈다.

‘들꽃상여’에는 신분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우다가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스러져 간 동학농민혁명의 넋들이 있다. 자신의 집을 자치 행정기관인 집강소로 내놓은 김제 원평의 동록개와 여성 장군 이소사, 소년장사 이복룡, 판소리창우부대의 또랑광대 소리쇠 등이 실려 있다.

‘거두리로다’는 자비로운 선행과 투철한 민족의식으로 전주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걸인 성자 이보한(1872∼1931)의 삶을 다룬다. 

‘1927 옥구 사람들’은 군산·옥구의 열혈 청년 장태성(1909∼1987)과 일제강점기 우리 농민의 대표적인 저항운동으로 꼽히는 옥구농민항일항쟁을 다뤘다. 

시조 시인 가람 이병기(1891∼1968)의 생가를 배경으로 한 ‘수우재에서’는 조선어 큰사전 편찬 작업을 하던 조선어학회를 항일독립운동 단체로 몰아 관계자들을 체포·투옥했던 조선어학회사건이 소재다.

‘아! 다시 살아…’는 5·18민주화운동의 첫 번째 희생자인 전북대학교 학생 이세종(1959∼1980)과 1980년 5월 17일·18일 전주의 처절한 밤을 담았다. 

최기우 작가는 “사건마다 상징적인 인물을 앞세우고, 그 인물의 흔적을 살펴 사람과 사건과 시대를 효율적으로 드러낼 방법을 찾고자 했다. 좀 더 집요한 기억과 꼼꼼한 기록과 신랄한 탐구로 실체를 드러내 확고한 역사를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했다”며 “더 많이 전하고 싶은 것은 사건 안팎에서 잊힌 사람들, 지금이라도 이름을 불러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름을 바르게 부르기 위해 희미하고 어렴풋한 행적을 좇았고, 넘치지 않는 범위에서 상상했다”고 출간 소회를 밝혔다./정해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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