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철 전라북도립국악원 학예연구사

세계적으로 젓가락을 쓰는 비율은 30%, 포크 30%, 맨손 40%로 그중 젓가락 사용 인구 18억명 중 한국과 중국, 일본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중·일 세 나라가 젓가락을 사용한 역사가 중국은 약 3,000여 년, 한국은 약 1,800여 년, 일본은 약 1,500여 년 정도 된다고 한다. 한자의 등장을 대략 은(殷)나라 갑골문자로 본다면 인류 문명사적으로 꽤 깊은 세월이다. 우리나라가 게임을 잘하고, 반도체를 잘 만들고, 골프를 잘 치는 이유가 젖가락으로 시작된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와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에 잠시 웃음으로 수긍한다. 

유럽의 장인은 중세 길드(guild)의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마스터(Master)에 이르기 위해서는 혹독한 도제(apprentice, 徒弟)과정을 거쳐 직인(journeyman, 職人), 자기가 원하는 선생을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이어진다. 이때에는 워크샵(workshop)이나 아틀리에(atelier)라 불리는 자신만의 공방은 갖지 못한다. 이러한 시스템으로 인해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는 주장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대를 잇는 일본의 장인정신은 또 어떤가. 여러 세대에 걸쳐 가족들이 흔들림 없이 헌신하고 부모의 발자취를 따라 가업의 유산을 이어가는 것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가문의 일원으로서 자부심과 명예를 갖게 한다.

일본인의 직업에 대한 치열함과 장인정신은 누가 시킨다고 나오는 가치관이 아니고, 자신의 수입 원천이 되는 고객에게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태도라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장인정신이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는 얘기도 있다. 

100년 기업 샤프가 몰락했고, 2013년 노키아는 휴대전화 사업 전부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 한국산업이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한다. 대표적 사례로 제시되는 것이 디지털 카메라를 최초로 개발한 필름 카메라 업계의 명가 코닥의 경우로 1900년대 누구나 사용하기 쉬운 필름 카메라를 내놓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코닥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해놓고도 필름 카메라 시장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시장 변화에 소극적으로 대응, 2012년 파산에 이르렀다. 일본은 카메라 산업을 렌즈나 필름의 기술적 측면을 더욱 정교화하는 방향으로 갔다면, 한국은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하는 혁신을 선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USB가 보편화된 지 오래지만, 일본은 아직도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뿐인가. 우리는 웬만한 소식은 SNS를 활용하거나 이메일을 사용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팩스를 사용한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겠지만 오죽하면 디지털청을 만들었겠는가. 아무튼 지금 일본은 장인정신의 실효성에 대해 고민인 듯하다,

일본의 장인들은 단순히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 그 자체인 일에 대해서 집념과 사상, 품격에 집중한다. 수십 년 일한 나이에도 자기 기술에 대한 노력은 계속된다. 일본의 장인은 일 전반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며 사회적 책임과 미래의 후손들을 생각하는 폭넓은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장인이 존중받는 배경에는 그러한 장인의 상품을 평가하는 소비자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우리 도공들이 일본에서 최고로 인정을 받으며 몇 세대를 걸쳐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가치를 알아봐 주는 소비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AI는 주어진 정보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존한다. 그리고 학습한다. 주어진 범주 안에서 말이다. 앞으로 펼쳐질 세상에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창조적 발상을 포함한 능력이 부여 될지 모르나 AI가 넘지 못하는 경계는 장인정신 일게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듣게 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방을 통해서 재현하려는 본성이 있다고 했다. 

이 지점에서 오늘 나에게 질문한다. AI와 다름을 증명해 보여라. 너는 오늘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가?, 너는 오늘 춤예술에 진심을 다했는가?, 너는 진정 춤을 세움에 있어 창조적 인간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고작 삶에 찌들어가다 보니 관성적으로 이춤 저춤을 부수고 깨고 다시 세우고 그것을 버무리고 있을 뿐이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지식과 경험을 쌓고 폭풍 같은 고뇌를 거듭한 예술가들의 열정과 노력을 필자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장인정신이 부족하다. 

1980년 재일한국인 프로 바둑기사 조치훈이 일본에서 명인 타이틀을 획득하자 국내 기자들이 바둑 둘 때 마음가짐에 대해 묻자“잇쇼켄메이(いっしょけんめい, 一生懸命)”,‘목숨을 걸고 둔다’로 번역하여 많이 회자 되었다. 

장인정신의 특징은 디테일(Detail)이 아름답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점으로 이 모든 것이 거의 본능적이다. 장인의 무게감이다. 다시 내게 묻는다. 진정 춤예술에 진심을 다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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