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구 언론인

요즘 여론주도층 사이에서는 ‘태조학교’를 열어 공동체의 미래지도자를 올바르게 양성하자는 게 주요 화두로 회자되고 있다. 여기서 지칭하는 태조는 후백제를 세운 진훤대왕과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 장군을 이른다. 태조 진훤대왕은 ‘태조학교’ 개교를 준비하고 있는 호남문화콘텐츠연구원의 송화섭 원장을 비롯해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명예교수, 곽장근 국립군산대학교 교수 등이 시호(諡號)로 주장하는 것이다. 조법종 우석대학교 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진훤대왕을 황제라고 부른다. 그 근거는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 경순왕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조 진훤대왕의 리더십은 탄생에서 방수군 비장으로 성장해서 거병을 하고 무진주(광주)에 도읍을 연 뒤 완산주(전주)에 정도하고, 삼한을 경략하며 통일전쟁을 벌인 과정에서 체계화할 수 있다. 진훤대왕은 문경시 가은읍 아채마을에서 태어났다. 탄생과 관련해 지렁이 설화가 전해지고 금하굴이 유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탄생설화를 올바르게 해석하면 지렁이가 아니라 용을 가리키며, 이로써 천명을 받았다고 본다. 대왕의 모친이 아자개 장군에게 음식을 보내려고 어린 대왕을 수풀에 내려놓자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고 한다.

그래서 진훤대왕은 “장성하면서 체격과 용모가 뛰어나게 기이했고, 뜻과 기상이 빼어나서 평범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왕은 16세 정남(丁男)이 됐을 때 군대를 따라 왕경에 갔다. 그리고 서남해로 부임해 수자리(국경)를 지켰다. 당시 대왕은 창을 베고 적을 기다렸다. 그 용기가 사졸의 으뜸이 되도록 일했기에 비장이 됐다고 한다. 신라 말기 귀족들의 부패는 나라를 존속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민생은 나락으로 떨어져 사방에서 초적들이 일어나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혼란은 영웅의 등장을 요구하며 새로운 질서의 확립을 시대적 과제로 만들게 한다. 대왕은 순천에서 889년 드디어 거병을 하고 892년 무진주(광주)를 습격해 스스로 왕(자왕)이라 했다. 중국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을 연상케 한다.

900년 전주에 도읍을 정했다. 대왕이 서순하여 완산주에 이르니 주민이 열렬히 환영했다. 진훤은 인심을 얻자 좌우에 “내가 삼국의 시초를 살펴보니, 마한이 먼저 일어나 누대로 발흥한 까닭에, 진한과 변한이 (마한을) 좇아 흥기했다. 이에 백제는 금마산에서 개국하여 6백여 년이었다.”고 했다. 대왕은 원백제의 몸통인 전주에서 백제를 계승해 의좌왕의 숙분을 풀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전주선언이다. 특히 영광스러운 백제 재건과 관련해 전주 천도 다음해에 독자연호 정개(正開)를 반포했다. 이도학 교수는 “바르게 열고, 펴고, 깨우치고, 시작한다.”는 의미가 함축됐다고 풀이한다. 이는 백성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백성을 위한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통치이념을 천명한 것이다.

대왕은 강원도 원주와 경상도 김해까지 강역을 넓히며 후삼국 최강의 나라를 건설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927년 공산 전투 승전 직후 왕건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기약하는 바는 평양문루에 활을 걸어두고 패강(대동강)에서 말의 목을 축이는 데 있도다.”라고 했다. 932년 9월 후백제군 선단이 예성강을 거쳐 개성에서 상륙작전을 벌여 고려를 크게 압박했다. 개경을 함락시켰으나 왕건을 놓쳐 원대한 삼한통일의 목전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후백제의 제2대 왕 신검은 교서에서 다음과 같이 태조의 공적을 높게 평가했다. “대왕의 신무(神武)는 보통사람보다 빼어나게 뛰어나셨고... 말세에 태어나셔서 스스로 세상을 건질 소임을 지고 삼한지역을 순행(徇行)하시면서 백제라는 나라를 회복하셨고... 백성들이 평안하고 화목하게 되어 북을 치고 춤을 추었고, 광풍과 우레처럼 먼 데나 가까운 데나 준마처럼 달려, 공업(功業)이 거의 중흥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태조 진훤대왕의 일생을 통해 백성을 살리며 백제를 재건하라는 천명을 실현하고자 하는 신인(神人, Homo Deus)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다. 즉 온전한 역사관과 미래 비전, 도전, 용기, 소통, 네트워크 형성 등을 통해 고대 국가공동체를 건설하며, 중세사로의 길을 열어준 영웅적 지도자의 덕목을 이어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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