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적어도 비즈니스계에서는 홀대를 받는다. 기업들의 로고 등 마케팅에서 한글은 힘을 못 쓴다. 지난해 한글날을 전후해 국내 대기업 중 로고에 순수하게 한글만을 사용한 경우를 조사한 보도기사가 나왔다. 그 결과 국내 대기업 82개 사 가운데 자사 로고에 한글을 쓰는 기업은 8개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10%도 안된다는 이야기다. 이들 기업 명단을 보면 중흥건설, 하림, 한화오션, 삼천리, 금호석유화학, 두나무, 글로벌 세아 그리고 농심이었다. 나머지 대기업들은 영문 CI만 사용하거나 한글과 외국어를 병기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스타트업들이 한글을 애용하는 흐름이다. 배달 플랫폼인 배달의 민족’,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 집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이 한글을 고집하는 이유는 실생활에 밀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한글 로고가 더 유리하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K팝 등 K-컬쳐가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면서 한글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다. 당초에는 세계적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해 로고에 한글을 썼다. 구찌나 루이비통, 크리스찬디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세계 7위 명품시장으로 발돋움한 한국 고객들을 공략하기 위해 한글로 마케팅한 것이다.

요즘은 이보다 한 발 더 나가고 있다. 한글을 해외시장에서도 그대로 쓰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우선 농심이 눈에 띈다. 이 회사는 지난 1971년부터 신라면이나 너구리 등 제품명을 한글 이름 그대로 사용해 수출해왔다. CJ제일제당 역시 최근 해외에서 판매되는 자사 제품들의 이름을 한글로 바꿨다. 하이트진로는 진로라는 이름을 모든 해외 판매 제품에 사용해 호응을 얻고 있다.

코카콜라가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자사 제품에 한글 로고를 도입한다고 한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36개국에 출시하는 한정판 제품 전면에 한글 코카-콜라로고를 넣은 것이다. 또 그 아래에는 상큼한 최애맛이라는 한글 설명을 달았다. 이 회사가 세계 시장에 내놓는 제품에 특정 국가의 문자를 쓴 것은 창사 이래 138년만에 처음 일이라고 한다. 물론 K팝 등 한류 돌풍을 자사 마케팅에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격세지감이 든다. 과거 우리나라 기업들은 무조건 영어 등 외국어를 써야 해외시장은 물론 국내 시장에서도 잘 팔린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국내 출시 상당수 제품에는 한글 자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류는 이 모든 것을 뒤집어놓았다. 그게 문화의 힘이다. 이미 아시아 시장에서는 한글이 프리미엄급이라는 상징으로 통한다고 하니 대단한 일이다. 앞으로 한글이 어엿한 브랜드로서 글로벌 기업들의 마케팅 수단으로 각광 받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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